검봉산아 동해바다야!
























































































































떠돌다가


























가리왕산 가는 길




































































































생각없이 살기

***생각없이 살기***
생각없이 산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낳은 생각은 思念이 되지 못하고 死念이 되어서다.
대책없이 산다. 무자식 상팔자라고 무대책이 상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넋놓고 산다. 비우고 산다. 버리고 산다. 새털처럼 가볍게 날고 싶기 때문이다.
잊고 산다. 잊혀진 채로 산다. 삶의 의미도 모른 채 살다 간 날
아무도 기억하지 말란 묘비명을 가슴에 안고 살기 때문이다.
속고 산다. 속절없이 산다. 온 곳이 어디인지 몰라 갈 곳 또한 모르기 때문이다.
속고 속이며 산다. 허위와 위선과 가식 속에 산다. 참을 찾으려들지 않는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진리만은 영원하여 너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해준다 하였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인간은 식물이다’ ‘이 꽃은 흰색이다’ 등은 반드시 참[眞]이든지 거짓이든지 둘 중의 하나 라 했다. 그렇다면 참이 진리라는 이야기가 성립되는데도 불구하고 참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참을 인지 또는 파악해내는 판단이 지식이고, 지식은 참이며 진리는 인식에 관한 초월적인 가치이며, 지성(知性)이 노리는 목적으로서의 초월적인 대상이다. 라고 정의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 하나 여러 가지 설(說)이 있는 진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전통적인 형이상학에서는 ‘사고(思考)와 존재의 합치가 진리라고도 하였다. 은폐되지 않은 것, 드러나 있는 것’ 이라고도 하였다. 즉, 진리라는 것은 존재 그 자체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고, 그와 같이 존재 그 자체를 드러나게 하는 것, 또는 존재의 진실상(眞實相)이 그곳에 드러나게 되는 장소가 이성(理性)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진리를 존재 그 자체에 관하여 논할 때 그것을 존재론적 진리(存在論的眞理)라고 한다면 인식론적 진리(認識論的眞理)와는 어떻게 다른가. 중세때는 신(神)에 기인하는 것으로만 간주되었다 한다.
사물을 창조하는 신의 진리. 따라서, 이것은 존재의 참[眞]에 관계를 맺고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참이 그것에 관계를 맺고서 성립하는 것으로 되었다. 고도 하였고 ‘진리란 각자에게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다’ 라고도 하였다. 그다지 쉽게 풀어놓은 것 같건만 어찌하여 인식해내기 어려운지 알 수 없다. 네가 찾는 참은 무엇이뇨. 오욕에 멀어진 눈으로는 보여지질 아니하기도 하고 보여질까 두려움에 감추어내며 진실은 없다. 라고 못 박아버리기도 한다.
영원과 존재와 진리..영원이란 글자 그대로 변함이 없다는 것이리라. 진리란 그대로 존재할 따름일 듯..허나 삼라만상이 있어도 참은 없고 만상이 오고 또 가니 영원 또한 없다하지 않았던가. 동기가 부여되지 않고 의미마져 주어지지 않는 삶 속에 있다 는 것은 데체 무엇이뇨..
내 마음대로 산다. 내 몸의 주인은 내맘인고로 혹사하며 산다.
육신이 고달픈 만큼 정신은 안락해지기 때문이다.
바보처럼 산다. 표리부동하게 산다. 도둑이고 싶어 하며 산다. 내가 바보냐? 라며 눈 부라린다거나
“난 도적아니야!” 하는 넘들치고 바보요 도둑아닌 넘 없기 때문이다.
나는도둑이로소이다도둑그대마음빼앗고싶은나는버리면이기리라는글에감명받아장기기증이라는모험을단행했지만수술하면수술기간은어쩔것이며수술후상처는흉하지않을까걱정하고있는나는그대육신을탐해온갖감언이설로그대순수한영혼마져나의수중으로넣고싶어세치혀놀리고있는나는순수하지아니한영혼은피마져맑지않을듯해헌혈마져소싯적이후론하지않고있는나는버리면무엇을더얻을수있을까치밀하게염두에도둬보는나는이기심의발로요공명심의극치요감춰두고만싶은내면의모습들춰내는나는당신이두려워하고염려하는바무서운사람아니죠라는말관상반되는나는무서운사람이오집착이강한면있기도하고때에따라서없에기도하는나는필요에따라선양심을속이기도하고양심을내세우기도하는나는거짓과모순과위선으로일관되고점철된삶을살면서도쌀몇포대와라면몇상자와연탄기백장으로가증스런자선을내세우는나는쾌락을찾아환락의세계에탐닉하면서도그릇된성풍조라며개탄하는나는여기삶의의미도모른채살다간이아무도기억하지말라고지어놓은묘비명이그럴싸하게걸맞다는생각에도젖어보는나는한줌재로나마이땅에밑거름으로나마뿌려졌으면하는나를어찌고독한몽상가라불러줄이있으리오어릿광대짓꺼리삐에로짓꺼리관둬버린나를돈키호태조!로불러주신이여!무모겠소용기겠소그대를정복하고파난또바람타고올라세치혈낼름댄다오.난돈키호태조닷!
꿈꾸며 산다. 꿈꾸는 한 이루어진다기에
꿈꾸는 한 행복하기에 그러나 밤에 꾸는 꿈은 언제나 몽상이었기에 낮 꿈을 꾸며 산다.
밤에 꾸는 꿈은 몽상이요 낮에 꾸는 꿈은 현실이라기에 낮 꿈을 꾸며 산다.
낮 꿈은 백일몽이라 웃고 산다. 너털 웃음 웃으며 산다.
***꿈인게야...***

그저 잠깐
꿈처럼 왔다 가는 인생이라기에 물처럼 살려 했어
오가는 이
아무도 눈길마저 주지 않는 이름없는 들꽃처럼 살자했어
푸른 하늘을 벗삼아 그저 두 둥실 떠다니는 한 가닥 구름처럼..
귀밑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처럼 그렇게 살자 했어...
버리고 살자 했어..
비우고 살자 했어..
버리고 비움으로써 또 다른 새로움을 엮어내며
한번 가면 다신 오지 않는 나 하나 만의 삶

인간 냄새 맡겨지는 삶을 살자 했어..
허지만,
허지만,,
끝없는 이 나락의 길은 도시 무에야..
버리려도 버리려도 버리지 못하고
비우려도 비우려도 비워내지 못하는 헛된 욕망은 무에야..
모두가 다 꿈인걸...
***허 허***
살아온 날 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습니까?
잊고 삽시다.
꿈꾸는 삶이어야 한다면 털어 버리고 삽시다 .
훌 훌 ---
인생은 나그네 길 이 라 지 않습디까?
한 조각 꿈이라지 않습디까?
일장춘몽!
그저 깜빡졸다 깨었던 꿈조각 같은 것이라지 않습디까?
눈 크게 뜨고 가슴 팍 열어 제치고
대범하고 호탕하게 털털 털어벌이고
훌 훌 벗어버리고
허 !허! 허 !
너털 웃음 한 번 웃어버리며
잊고 삽시다.
허 허 !
미쳐 산다. 돈돈돈돈 세상만사 돈이라야만 하는 돈세상
미치지 않고서야 돌아버리고 말 것 같기 때문이다.
돈세상 따라 돌지 않으려면 미쳐 사는 게 상책이기 때문이다.
돈다지구가돈다세상이돈다머리가돈다돈다세탁기가돌고보일러가돌고돌라는돈은안돌고왔음하는사랑도안돈다돈다보고싶어눈이돈다돈다세상은미쳐돈다도는시류에따라미치지않으려따라돈다돌고돈다는세상돌고돈다는돈돌고돈다는유행따라사랑도돈다하니이리로도돌아보고저리로도돌아보자사이버세상에서나마나그네되어삼천리라반도금수나강산돌고돈다눈이라도펑펑내려쌓인담눈따라돌자
취해 산다. 미쳐살지 못하면 취해서라도 살아야 한다.
술이술을마셔댄다술술마셔대는술은간을 마시고나를마시고이성과자아를마셔낸다술술거침도없고막힘도없이술술넘어간다잠시잠깐의환락과쾌락과안도의한숨끝엔언제나휑한눈쓰린속에넌더릴해내는것도잠시몽매한자의가슴엔독약임에도내겐약이다잊고자붓고잊혀지지않아붓고아파붓고붓다보니붓기위해붓는다붓다보니간이붓고간부어눈붓고흐려진눈탓한다시류탓한다날탓한다찌푸린하늘탓한다네탓한다오살헐놈의다리탓한다울화가치솟음여분의다릴화나게한다목놓아울어라도보고목터지라고래고래소리라도질러봄좀풀린단말따나화나게한여분의다릴마구내지름개운하련진그도알수없다왜사는건지도알수없고왜살아가는지도알수없다그립단생각은왜서드는건지도알수없다보곱단생각도안아보곱단생각도안겨죽곱단생각도날버리고싶단생각도버릴수도없단생각도드는지알수없다하늘은왜서진종일찌푸둥한지도알수없다눈발을아니날려주는지도알수없다이모든게다알수없다추잡하고더러운영혼임은알수있다가증스러움도알수있다내겐영혼이존재하지않음또한안다하여고귀하고존귀한영혼어쩌고저쩌고는강건너불이다고귀하고존귀한영혼들의소릴듣는다감동의소리울림의소리를들어냄도아픔이다담배한개빌물어뜯는다담배그거독약입니다한일년전에만끊었음하며다죽어가면서공익광고에출연했던이주일은있었지만없다기억하는이있을수도있고없을수도있다없고싶은넌어디메에있었으며어디메에있는게냐있단다면술술부은술에무아요절아뿐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며 산다.
내 눈속에 별 하나 있었네.
내 가슴속에도 별 하나 있었네.
잡을 수 없었네.

서글펐던 안타까움에
내 눈속에 있던 별 꺼내 보네.
쥐면 날아 갈까 두려워 쥐어보지 못한 나의 별..

가슴 속에만 묻었던 별 꺼내 안아 보네.
내 눈속에 있던 별 하나 보이지 않네.
흐르는 눈물에 가려 볼 수 없네.
쥐면 날아 갈까 잡을 수 도 없던 별.

메말라버린 눈물에 가려 볼 수 조차 없는 별.
그저 가슴에 묻힌 별 살포시 꺼내 안아 보는
나의 슬픈 미소가 별빛에 아롱이네..

***얼굴***

푸른 하늘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타는 노을보다 더 고웁던 눈빛..
산과 바다를 가리우고 있었습니다.
눈망울엔 호수가 잠겨 있었고
별 하나 내려와 앉아 있었습니다.
한 입 가득 베어 물면
복사꽃 향 흩날릴 것 같았던 입술
눈 지긋이 감고 꿈길 더듬어 봅니다.

풋사과..
새하이얀 손 나빌래어
고웁던 목에 앉아 반짝이던 별 하나
별 되어 그 가슴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칠흑은 얼마나 검은 것이며 암흑은 또 얼마나 캄캄한 것이기에 어두운 밤을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표현을 하고 암흑같이 캄캄하다고 표현을 하는 걸까 만서도 그밤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안개는 또 어디서 밀려왔는지도 모르는 놈이 스믈거리며 어둠을 틈타 주검의 그림자인양 음흉하게 내 잠속을 파고 들던 밤이었다. 한가닥 남아 있던 별빛 달빛마져 안개를 피해 빛을 찾아 길 떠난듯 했고 똘물가의 방범등마져 잠들어 있었던 밤이었다.
발 아래를 더듬어 뜨락에 나서 봤다. 손을 들어 얼굴에 들이 밀어 봐도 보이지 않던 내손..말 그대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밤이었다. 밤은 어두워야 밤이듯 밤은 칠흑같고 암흑같고 한치 앞마져 보이지 않을 수 록 좋은 법은 아니던가.좋다.어두워서 좋다.눈을 감고 있을 수 있어서 좋다. 눈을 떠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보고 싶잖은 것 보지 않을 수 있어서 좋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서 좋았다. 이불마져 끌어 당겨 깊숙히 얼굴을 묻으니 밤은 그야말로 어둠 그 자체였다. 어둠속에서 눈을 뜬다 한들 그 무얼 할 수 나 있겠으며 밤에 눈뜨고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게 있을라구..
밤은 밤이기에 밤에 하는 사랑의 역사마져도 눈감고 해내던걸..그런 밤 어둠속에서 날 내려다 보는 눈 하나 있었다. 갈매기가 날던 눈..처얼썩 일렁이는 바다가 빠져 있던 눈..그 눈이 어두운 밤 내 감은 눈속에서 별빛인양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밤에는 찢어진 봉창너머로 세어나오는 갸녀린 빛 하나로도 잃어버린 길을 찾을 수 있을 듯,찬란하던 햇살을 받아 반짝하고 빛나던 것 하나 내 눈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삼단같이 길고 칠흑같이 검은 머리에 비릿한 바다내음이 묻어 나왔고 목이 길어 슬퍼보인다고 시인은 노래했던가.
그 곱고도 하이얀 목에 안겨 반짝이던 목걸이가 되고 싶었다. 부끄럽다고 얼굴을 묻을라 치면 백옥 가루 내어 분바르고 수줍다 수줍다면서도 봉긋 봉긋이 터져오르던 목련의 속살에서 처럼 미어터지게 코를 간지럽힐 우유빛 젖내음 ..그 가슴을 꿈에서 나마 한번만이라도 안아 본다치면 내 가슴은 아마도 터져버렸을 게고 낭창 낭창한 허리는 살며시라도 껴안아도 휘어질가 두려워 내 가슴 떨리게 했으며 아! 곱고도 고울세라 길고도 하이얗던 손 ..잘가라고 내밀던 손..
맞잡으면 내 손이 타버릴까 두려워 허공에다 대고 흔들며 이 다음에 또 만나자는 기약도 없이, 그럼.. 이만, 굳바이! 하고 돌아 서게 했던 손짓이 보였다. 그녀는 별이었다.언제 까지나 내 가슴속에서 빛나는 별이며 붙잡을 수 없는 별 이며 내 가슴에 품어 볼 수 없는 별 이며 꿈속의 여인이었다. 어느 봄 밤 내 시린 꿈속에 나타나 내 두귓가를 타고 흐르던 눈물을 닦아내 주던 별이었다. 내가 다시 사랑에 빠져들 수 있노란다면 그런 여인의 손을 맞잡아 보고 그 낭창한 허리를 안아도 보며 그녀의 목에 걸려 반짝이던 목걸이가 되는 게다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사랑은 두려움이다. 사랑은 슬픔이며 사랑은 또한 몽환인게다. 그 별을 찾으러 몽환에 젖어 수덕사에 갔었다.

수덕사에 갔었네.
나의 별을찾았네.
모두가 똑같던 모습
찾지 못했네.
삼단같던 머리
하이얀 목에 걸려 반짝이던 목걸이가 되어
목에 안기고프던 목걸이가 있었음 알아볼 수 있었으련만
힘없이 돌아 서던 내 발길에
걷어 채이던 달그림자가 울고 있대
달은 떳건만 나의 별은 보이지 않데
달그림자에 가려설랑 보이지 않데
얄미웠던 달
그 달 따다 시궁창에 처박아 버리고 싶었네
***봄 밤에 꾼 꿈***

삼단 같이 고운 머리였습니다.
칠흑같은 검은 머리였습니다.
살랑이는 봄햇살 아래 이슬되어 반짝였고
코끝 간지럽히던 봄바람에 찰랑대던 자태
내 눈 둘바를 몰라하게 했습니다.
들꽃 만발한 길을 마구 내달렸습니다.
살며시 내팔을 잡아주던 손..
두려움에 어찌 할 바 몰라 하던 손으로 맞잡아 보았습니다.
기쁨에 겨워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
고운 손으로 닦아내 주고
달디 단 입술이 내볼을 스칠때 꿈에서 깨었습니다.

아! 참으로 고운 꿈이었습니다.
꿈속의 여인 이여!
당신은 뉘시기에 내꿈속에 내리시어
봄밤을 향기로 채워주셨습니까?
창 비집고 쏟아지는 햇살속에 눈부시게 떠오르는 모습
아직도 꿈결인 양 더듬어 봅니다.
내가 다시 사랑에 빠져들 수 있다면 그런 여인의 손을 맞잡아 보고 그 낭창한 허리를 안아도 보는게다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두려움이며 슬픔이며 사랑은 또한 몽환인것입니다.

이탈하고 싶은 일탈을 꿈꾸며 산다.
한 가닥 빛도 희망도 없는 어둠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눈물로 씨 뿌린 자 기쁨으로 거둘 것이라 했건만..
결실과 풍요의 계절이라 한들 거둘게 암 것도 없는 건..
뿌리기만 했을 뿐 돌보지를 아니하였던 결과였으니 사필귀정일 터.
변명의 여지나마 있겠는가.

사안이 그러함에
돌이킬수 없는 회한의 끝자락 움켜쥐려 발버둥 치는 건 사치요.
터널 끝은 찬란한 빛이 기다림 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허영이다.
더 이상 무얼 바랄 것도 없고 나빠질 것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걸 아는 나가 이왕지사 이렇게 된 터.
갈데까지 가보지 않겠냐며 꼬드겨댄다.

아직은 가보지 않은 곳이지만 통념상 갈데까지 가보지 않았다 해도
그 곳이 어떠한 곳일진 불을 보듯 뻐언할 곳임을 아는 나이기에
그 곳인들 어찌 두려워하랴만..
아! 그러나 그 무엇이 그리도 뻐언한 곳을 향하여
갈데까지 가보자는 망념속에 빠지게 하는지 알수 없다.

넌 내게 무엇이고 난 네게 무엇이냐.
난 속물이긴 하지만.
너의 맘 빼앗고 싶은 도둑이고 싶긴 하지만
급기야 난 죽임을 받고 넌 죽임을 당하는 길 밖엔 다른 방도가 없을 길을 강요해댈 순 없다.

또 술을 마신게로구나.
어케 아느냐고?
넌 언제나 술을 마신 연후에나 저나를 했고
그런 넌 언제나 콧소리가 섞여 나왔었다.

오늘도 기분이 드럽다고?
왜 글케 더러워졌는진 묻지 않으마.
사노라면 기분이 드러울 때도 왕왕 있는 법 아니더냐.
난 언제나 비만 오심 저나를 하는 게나
넌 언제나 수를 마셔야만 저나를 하는게나 피장파장은 아닌가도 싶다.


너는 닻별.
오늘도 저문 해를 발판으로 오신 어둠과 함께
귀뚜라민 귀뜨르르 귀뚤,귀뚤대는가 하면 쓰르라민 쓰르륵대는 속에
어둠은 무거워지고 밤은 깊어가기를 재촉한다.

너는 닻별.
널 만나려면 밤은 무거울 수록 좋고 어둠은 깊어질 수록 좋던 걸 기억해내며
북편 하늘을 올려다 본다.
그때엔 북쪽하늘을 눈 여겨 봐봤자 아무것도 보아낼수 없었음은
그땐 겨우 초복이 지났을 따름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닻별.
다섯 개 의 별이 W 자 모양을 이루어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과 마주보고 있는 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는 너를 발견한 사람은
너에게 닻별이란 이름을 붙혀주었다더구나,

그는 왜 너에게 배에게만 필요한 닻을
굳이 네게도 필요할 것이라며 메달아 주었는지 나로써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닻은 떠돌던 배가 항구에 머물 때 만 필요한 것.
항구의 이별이라 함은 고동소리와 함께 닻을 거두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
물길 따라 배가 떠가고 흘러가는 것.

사랑 또한 흐르는 것 처럼 흐르기도 하고 떠도는 구름처럼 떠돌기도 하는 것.
바람이 머물고 갔던 자리 알 수 없는 곳이 사랑이 있었던 자리라는 것.
반짝이는 별빛 같은 것.
태우고 또 태워도 못다 태워낸 건 마지막 유성이 되어서라도
영원히 소멸시켜버려야 한다며 몸부림치는 것.

그 때 너를 갖고 싶었다.

너를 안고 싶다.
네 작은 가슴 온몸으로 보듬어줘
부풀려 주고 싶다.

작고 가여운 네 꼭지
입안에 넣고 혀로 굴려 세워 주어
나도 서고 싶다.

날 세운 슬픔으로
너의 뻥 뚤린 허무를 체워 주어
절정에 오르고 싶다.

잠과 죽음은 형제같다지 아니하더냐
밤과 어둠은 연인 같을 터
우리 밤과 어둠을 빌려

너는 이브!
나는 아담!

우리 사과를 훔쳐 먹었듯
죄를 지어 보자 꾸나.

욕심은 죄를 낳고
죄의 끝은 사망에 이른다지만

우리가 짓는 죄는 사랑을 낳고
우리의 사랑은 또 다른 창조는 아니겠더냐

너는 나의 이브가 되고
나는 너의 아담이 되어

오너라 어둠이 주는 유혹을 뿌리치지 말고
내품에 와락 안겨오면
나는 얼싸안으리라.

와락 안기고 얼싸 안아
서로를 갖자.

오너라! 더,더 가까이..
깊숙이...

아! 너는 닻별.
그땐 아직도 여름 한 모서리인 탓에 희미한 너를 찾아내기란
여간이나 곤혹스러워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런 너를 사랑하는 네게 닻을 메달아 버렸음은
그런 너를 사랑해야 하는 내게만 가혹한게냐. 네게도 가혹할게냐. .
너는 닻별. 나는 죽어서도 별이 되지 않겠다 하지 않았던가.

너는 닻별. 지금은 여름이 극성부리고 있던 때가 아니다.
그때...
아직은 넌 너무도 먼 곳에 있어 희미할지라도
너를 찾아 헤멨던 그 밤은 언제나 처럼 훅! 하고 네게서 맡겨지던
향 좋은 비누냄새처럼 나를 달뜨게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나 나누던 눈 인사있었을 제
너의 눈 속에 별 하나 있었다.
그런 너의 눈을 보며 닻별을 떠올렸다.

넌 닻별 난 속물. 네게 족쇄처럼 채워진 닻을 풀어낼 힘이 내겐 없다.
넌 내게 무엇이고 난 네게 무엇인지 알수 없던 때 있었다.
그 때 난 처언이고 넌 두웅이었다.

나는 처-언 이네라.
처용이 아니라..처-언,,
내 그리운 이는 두-웅 이네라.

처-언 하고 불렀네라, 허면 두-웅 하고 화답하여
우리는 처-언둥이 되어 바람과 구름의 난무속에
드디어 눈빛 마주친 자리 불꽃 토해내던 소리

내가 부르던 소리 그대가 듣느뇨?
우리가 하나 되어 흐느끼다
내 슬픔의 눈물인양 떨구어 내던 빗 소리 그대가 아느뇨?

생각마져도 죄인지라 난 죄인이로소
하여
죄가 된 생각은 내 잠에 꿈으로 이어져

꿈은 꾸는 자들만의 것이란 다기에
꿈 꾸는 한 이루어 진다기에
꿈 꾸는 한 행복하다기에

반딧불이 놓아준 다리 건너 보드라운 오솔길 걷노라니 펼쳐지던 숲
산에 산에는 숲이 있었고
숲 헤치다 보니 떠억허니 옹달샘 하나

목마른 이여! 어서 갈증을 풀라며
어서 퍼내 달라며 열어준 다리사이
죄 지었네, 죄 지었네,그여코 죄 지었네.
허기진 늑대와 목 마른 사슴의 사랑은 죄일세.
난 죄인일쎄, 죄인!

죄의 끝은 사망이라지만
아! 허지만 죄 지어서라도 사랑을 얻을 수 있노란다면
아! 차라리 나는 숨어 우는 죄인이 될게고

그렇게 얻은 사랑으로 사망에 이르러도
잘 죽었다 노래하리니
가자! 속절없는 사랑아!

우리 가자! 네가 열어준 열락의 나락으로
바람과 구름이 사라지고 빗소리 멎기전에
어서! 어서!,,,

차암 살아볼 것 없는 세상이다.
머릿가죽을 벗겨낼 듯 뜨거웁게 이글거리던 태양이었다.
저넘 언제나 서산너머로 꼬리를 내릴 것인지 셈해볼 땐
추욱 늘어진 소꼬리처럼 길기도 하더건만 쥐꼬리보다도 더 짧아졌다.
예 닐곱 시만 되면 밀려드는 어둠앞에 세상 차암 살아볼 것 없다는 비애에 젖어들게 된다.

나날이 빛을 잃어가는 잎새들도 그 푸르름과 무성함 자랑하던 때 언제였냐는 듯 싶다.
조만간엔 꽃도 지고 잎도 질 그 위로 나의 슬픔과 설움도 채곡채곡 쌓여만 갈 터.
벌써부터 잠겨드는 조락의 비애 어찌할소냐.

이럴 때 혹자는 이런 말로 위롤 해주기도 하리라.
촛불은 스스로를 밝히기 위해 제 몸을 태우는게 아니라 지 않터냐며..
꽃지고 잎마저 져 설움이 되기 전에 긁어 모아 태워버리면 되잖겠냐며..
허지만 태우고 또 태워낸다 해도
끝내 다 태워내지 못할 상념의 나래들은 무엇인가.

개나 걸이나 다 좋은 윳놀이 판 같은 인생이란다면
혹자는 너무 무미건조한 삶이진 않겠냐며
아무런 의미도 주어지지 않아 권태롭겠다는 배부른 소리 지껄여대기도 하겠지만,

모 아니면 도 라며..
이판 사판이라며..
이 판이라면 살 판이요.
사 판이라면 죽을 판이라며..

혼신의 힘과 기와 염원을 실어 던져보건만
언제나 도 도 아닌 낙판이었던 인생앞에 놓여지던 건
패자의 쓰디 쓴 잔이었을 뿐,
승자의 축배가 안겨주는 그 달콤함의 쾌감은 누려본 적 없는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요 모냥 요 꼬라지가 되었지만
도야질 생각혀줘라.

밤과 어둠이여!
그댄 넘 어둡고 깊어 그댈 마지할라치면
언제나 부르르 떨렸던 가슴였지만
이잔 아니다. 며..
아닌 건 모냐. 며..

난 네가 닻별임을 알고 있지만
넌 내가 속물임을 아지 못하는 것 같기두 하더구나..며..
허기에 그렇잖았겄느냐.며..

살고 잡고 잃고 싶지도 않타 했드냐며..
살고 잡단 말도 이해가 가고 잃고 싶잖탄 말도 이해가 간다며..
허나..
허나 어찌 두 마리 토낄 잡을 수 있겄느냐며..


넘 보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마알간 햇살 싱그런 하늘인양
고운 미소 머금던 네가 보고 싶었다.

까치발로 기다림 하는 첫눈 같던 네가 보고 싶었고
샛별인양 희망으로 다가오던 네가 보고 싶었다.
그리워 할 수도 없는 그리움 그 이상인 네가 보고 싶었다.

차암 맑고 그윽하고 부드러운 네 눈이 보고 싶었다.
지긋이 눈 감으면 감아낸 눈 속에도 떠오르는
샛별이 들어 있는 듯 헌 네 눈을 그려보던 건 무엇이었으랴.

장대도 끝이 있다 듯 슬픔 또한 끝이 있다는 희망으로
그 별 따 어루만져보고 맞잡아 보고
가슴에 안아보고 품어보고픈 맘 깊다.

아! 넌 닻별이고 난 속물임이 여실하다.
널 봐내렴 난 언제나 알몸이라야 했다.
알몸으루다 널 봄은 언제나 벌벌 떨리는 일였다.
모두가 잠 못 이루는 열대야의 밤일지라도. 벌벌 떨어야만 했다.

아! 넌 닻별 난 속물..
이젠 한 여름밤도 아님에 열대야의 밤보다도 더 떨면서
네가 있는 북편 하늘을 찾기 위해 빙빙돈다.

해가 용솟음 하는 치악은 동편이니 만티 거길 깃점으루다 빙빙돈다.
해는 이 산으루로 넘어가고 저 산으루도 넘어가건만
언제나 서 산으루다 넘어간다는 서 산 마루편은 서쪽일게구

봄은..
봄을 기다리는 맘에서 부터 온다 듯
따땃한 남풍이 불어오는 그곳의 반대 방향이 네가 있는 곳 일 터.
날 흐렸나 달도 별도 아니 보이건만 가물해지는 눈을 부릅떠 널 찾아 해메인다.

우린 언젠가 꼬옥 다시 함 만나야만 된다.
그 바람과 염원 이다지도 큼에 우린 언젠간 기필코 만날수 있잖켯느냐며..
지금은 아무리 눈 부릅뜬단들 볼수도 만날 수도 없는 넌
넘 먼곳에 있기에 걍 그려만 본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만 있다면야
너와 나 사이에 가로막힌 장벽이 있다혀도 가벼웁게 넘어설수 잇겄지만
뉘라 시공을 넘어설 수 있겄느냐.

아! 넌 닻별 난 속물! 널 그리듯 날 그리고 있는지 이잔 몰겄음은 무엇이냐.
하루 한시도 빠짐없이 칼라 링으루다 설정해 논 송어가 뛰놀 쩨 있었다.
손 맛인 양 저나를 귀에 댐 언제나 알려뷰거나 보고싶어 미치겄다거나
"저 가출할까여" 거런 택도 없는 말 다시는 나불대지 말거라.

우린 숨어서나 뜨는 별이 되자 하지 않았드냐.







내게 그리움을 주는 이여! 우리는 보석이 되지 말자.
영원히 변치 않는건 보석이 된다더건만
귀 밑 머리 파 뿌리 될때 까지 함께 하자던 언약의 맹세도
흐르는 사랑인지라 변한다는 속에
남몰래 그리워 해야 하는 우리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아 보석이 되겠더냐.

나의 여인아! 차라리..
아! 차라리 우리는 숨어서나 뜨는 별이 되자.
어둠속에서 찬란히
저마다의 이름을 달고 뜨는 별들 속에 숨어
눈길 주는 이 없어 두려움 없을 눈짓이나마 나눌수 있는
우리는 숨어서나 뜨는 별이 되자.

별이 빛나는 건 어둠을 밝혀주기 위함에설 터겄지만
해 떨어지자 마자 날은 저물어지고
날 저물자 마자 이내 주검과도 같다 여겼던 밤과 어둠이 밀려들던 때 있었다.

난 네가 싫타며 진저릴 쳐봐도 암 소용없었다.
어둔 밤은 시커먼 아가리를 뱀대가리처럼 쩌억 벌려 날 집어삼킬 듯 싶었고
깊은 밤은 글찮아도 시원찮은 내 사질 붙들어매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는 곳..
설령 께어난다 해도 무간지옥일 어둠의 나락으로 떨궈낼 것만 같았다.

하여...
밤과 어둠이 싫타며..
떠러지려는 해 붙잡으려 씨름했던 적 있었다.

허나...
널 보려면 밤은 어둬야 되고 어둠은 깊어야만 된단 걸 알게 된 연후부턴
붙잡을 수 없는 해 안으려 마빡에 내 천짜 긋는 일 없게 되얐다.
그 월매나 다행이랴.

주름!!
세월의 질곡! 고걸 어쪄겄느냐만
부탁하건데 지발 날 아자씨라 부르지 말그라.

난 세월의 질곡을 만들고 싶잖컨만
얼굴이란 넘은 내 맘관 달리 절로,절로 그늘도 맹글고 질곡도 맹글어

난 가고 싶다
처얼 썩 부서지는 파도가 있는 그곳에
갈매기 끼룩 울음 울며 날고 가이없는 수평선 흰 돛단배 하나
두 둥실 뭉개구름 하나가 주는 그리움은 또어이 하리오만--
바다가 보고 싶다시던 그리운 이의 심사는 내 심사가 아니리오만
밀려왔다 밀려가는 검은 파도 소리도 이내 귀를 간지럽히던 곳.
바다---
난 싫다.
호수같이 잔잔한 그곳은 싫다.
내 엿보이고 싶잖은 마음이 들여다 보일듯 해 싫다
.
폭풍우 휘몰아 치고 파도는 드높아야 한다.
때리어야만 한다.
부수어야만 한다
삼키어야만 한다.
내가 그대가 되고 그대가 내가 되고
아니 내가 그대가 될수 없고 그대는 내가 될 수 없음에
종내에는 내가 없고 애초에도 내가 없던 바다여!

난 그저 그대의 품에 안기우고 싶다.
난 그저 그대의 품에 안기워서
나를 잊고 싶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싶어 하며 산다.
달도 별도 뜨지 말았음 좋겠다 했더니만 초 닷샛날 달이 다 닳아빠진 낫자루 모양을 하고 서산 마루에 걸려있었다. 그 밤도 나는 밤길 꿈길에 젖어 마음가는 데로 길떠나고 싶었었다. 초록별이 사는 곳 베가성은 애모의 노래를 타고 날고 싶었고, 인어공주가 사는 용궁엔 홍어 꼬리를 잡고 가고 싶었다. 18박 19일이 걸린다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은 눈보라 휘몰아치는 오동지 섣달이라야 될 터이니 당분간은 접어두어야 할게고 내가 빠져 죽고 싶은 눈 시리게 포리한 바단 비바람 몰아치고 파돈 드세야 할게니 일기예보 맞추기가 좀 힘들겐가.. 하니 그도 접어두어야만 했다. 초록 치마를 겹겹이 둘러 입고 앉아 있는 듯 한, 첩첩 산은 어떨까? 아무 것도.. 아무도 없는 빈산! 허허로운 틈새로 난 솔숲 작은 오솔길을 따라 가다봄 내가 조만간에 갈 북망산이 게 있을런지도 모르잖겠던가!...
나의 여인아!
산사에 머물지도 못하고 한많은 속세까지 내려와
내 잠을 깨우며 울어대는 인경소리가 여명을 몰고 온다.
동도 트지 말고 이대로 언제까지나 밤과 어둠만 지속되어 준다면야 오죽이나 좋겠느냐,
일으키고 싶잖은 육신은 이대로 죽은 듯 내팽겨쳐버리고
슬픈 영혼이나마 밤과 어둠을 빌어 너를 찾는다.
나의 여인아!
추웁다. 날 안아주렴,,
내가 꿈속에서도 찾아 헤메이는 곳 무릉도원이 네품이고
피안의 땅이 너의 품이며 잃어버린 곳 실락원이 네 가슴은 아니겠느냐?
봉긋이 솟아 올라 터질 듯 한 가슴에 이내 가슴 다 터져 나가기 전에
어서어서 너의 젖 무덤에 날 묻어 주렴.
네가 물려주는 젖 내음에 취해 잠들고 싶다.
날 안아 주렴. 네게 안겨 비릿한 밤 꽃향에 젖게 해주렴.
네 안에서 난 아직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렴.
나의 여인아!
닭이 훼를 쳐대며 내 잠과 꿈을 앗아 가려한다.
먼동이 트려한다. 난 싫은 밝음이 오기전에 어서어서 날 안아 주렴.
아! 참으로 따스한 네 품은 아니겠느냐
너의 입술은 무화과 보다도 더 달콤하고 너의 살결은 옥 보다도 더 고울게다.

네가 열어 주는 살 내음에 밤을 잊고 살아 왔던 외로움 씻어주렴.
나의 여인아! 나의 애닳는 소리 네 귀 있어 듣느냐?
동산 머리에 먼동이 터오르기 전에 어서어서,,
아! 나의 여인아! 우린 벌거벗었어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에덴으로 돌아가자.
그 어느 곳이라 한들 어떠랴..길떠나는 내 곁엔 친구 해준다는 이거나 앤 해준다는 이가 있어도 좋고 없단담 또 어떻겠는가! 숲속엔 모든 것이 다 있지 않던가! 솔 바람 물 소리가 반길게고 새 소리며 계곡을 돌아 나오던 바람이 길 가다 반겨주진 않겠던가! 날 다람쥐가 날다 놀란다거나 날 다람쥐 날던 소리에 내가 놀란들 대수겠던가! 어디든 떠나고 싶은 이 어디 게 누구 없소?
온몸에서 흐르던건 신열이었던가! 열은 없었건만 이불이 흥건하고 온몸이 흥건하고 속곳이 쥐어 짜면 뚝뚝 떨어질듯 하던건 땀이었다. 머리맡에 있던 수건을 더듬더듬 찾아들곤 온몸 구석구석을 닦아내는데 불알밑도 예외는 아니었다. 살며 사랑하며 애써 배우기를 원했던 삶이었다. 희망과 꿈과 사랑을 먹던 좋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가 잠못들게 하기도 했다. 내 앞에 주어진 삶은 어느만큼일까..어디로 가야하는겔까! 갈길 몰라 헤메이던 밤길은...

나의 이브!
넌 정숙하지 않아도 좋고 현숙하지 않아도 좋다.
妖夫여도 좋고 唱夫라도 좋다.
나의 이브!
너와 난 裸夫 가 아니었더냐.
나의 이브! 오너라.
여명이 오기도 전에 홰부터 쳐대는 닭 울음 소리 들리기 전에
우리는 벌거 벗었어도 부끄러운줄 몰랐고
우리가 사랑을 나누어도 죄인 줄 몰랐던 에덴 동산
우리가 잃어버린 실락원을 찾아가자.
우리 믿자.
믿을 것 하나 없는 타락한 세상 신은 존재해야만 하지만
신은 죽었다고 외쳐댔던 니이체를 믿고
우리가 쫓겨났던 실락원을 찾아 순수로 돌아가자.
오너라 오되 나의 이브 시드는 꽃이 되지 말고
반기되 꿀만 찾아 이,저리로 노니는 나비가 되지는 아니할 터
너는 구름이 되고 나는 바람이 되어 바람과 구름의 운무로 하나 되어
우리 무릉도원을 노닐어도 보고 뒹굴어도 보자.
나의 이브!
네가 내 것이었더냐?
이젠 내 것이 아님에도 발그레한 입술은 훔쳐 먹어 보고 프고
비릿한 젖 내음 부라우스 단추가 터져 나갈 듯 탱탱한 젖 가슴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님에도
안아 보고 싶고 묻혀 보고 싶다.
차가운 흙 무덤에 묻히기 전에 어서 어서 이브 너의 젖 무덤에 묻혀 보고 싶다.

날 안아주렴.
산은 홑산이래도 좋더만 나의 이브 넌 겹 산 이라 더욱 좋다.
울창한 숲을 가르고 조르르 맑은 물 흐르는 샘가를 찾아
지친 육신을 누이며 허기진 갈증을 채우고 싶다.
아! 나의 이브
넌 어듸메로 꽃같이 숨었느뇨.
이 밤도 난 널 찾아 꿈 속을 헤메인다.
어둠과 주검이 형제 같단다면 잠과 꿈은 연인 같지 않겠더냐?
잠을 빌려 꿈을 꾸며 아! 나의 이브 널 찾아 왼밤 꿈 속을 헤메인다.
나의 이브 널 찾았다. 꿈꾸는 한 이루어 진다지 아니하더냐.
하여 꿈은 꿀수록 좋고 꾸어질 수록 좋더라.
꿈에서 꾼 꿈 속에서 널 찾아냈다.
하! 꿈속에서도 아련턴 네 모습 태초엔 나의 것이었건만
이제는 남의 것 남의 품에 안겨 나와 뒹굴어 대던 무릉도원을 뒹굴던 네가

남의 땅 이제는 남의 이브! 아! 네가 정녕 나의 이브였더냐?
사랑도 사람의 일인지라 만날 때 헤어짐을 걱정하지 아니하진 아니 하였다지만
남몰래 사랑하던 우리 사이에 남몰래 이별이 올줄은 몰랐다며 통곡하던
상화의 눈물이 내가슴에도 흐르노라.
흐르는 눈물을 부여 잡고 나는 이밤도 통곡하노라.
사랑은 눈물이라며..
사랑은 아픔이며
사랑은 슬픔이며
사랑은 몽환이라며...
사랑을 잃은 자의 가슴은 황량했습니다.
그의 가슴은 사막이었습니다.
불어대는 모래바람 온몸으로 맞으며 신기루에 끌려 이,저리로 내밀렸지만
애초에 오아시스마저 없는 사막이언 양 그만 모래언덕이 되고 말았었습니다.
사랑을 잃은 자의 가슴은 툰드라 지대 였습니다.
툰드라 지대에는 애시당초 봄은 없었던 양
눈덮힌 시베리아 벌판에서 휘몰아쳐대는 눈보라에 그만
눈 언덕이 되고 말았었습니다.
사랑! 그 미증유의 슬픔앞에
모래언덕이 되고 눈 언덕이 되어
애시당초 사랑은 없었던 양 주검같은 존재
아니 애초엔 존재마저도 없었던 양 죽음보다도 더 깊은 잠속에 빠져 있었습니까.
세월이 약인겁니까
그 얼마의 망각의 세월이 그렇게도 무심히 흘러가버린 겁니까
그 얼마나 오랜동안 존재마저도 잊히운 채로 망각의 늪속에 빠져있었습니까
모래언덕이 되고 눈 언덕이 되어
죽음보다도 더 깊은 잠속에 빠져 있더라니
모래바람속에서 물냄새 하아--이내 잠을 깨우고 있습니다.
눈보라속에 날려온 꽃씨 하나
동토의 땅에서도 싹 틔우려 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 미증유의 슬픔의 싹을 --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도 않고 산다.
별을 보며 산다.

별이 스러진다.
달빛마저 스러진다.
스러져가는 별빛 달빛에 나의 꿈도 스러져 간다.
스러져간 별빛 달빛 내일이면 또 찬란히도 빛을 발하리라만
스러져가는 이내 꿈과 영혼은 어이 빛을 찾을 수 가 있으랴..
깜깜한 밤에 뜨락에 내려서서 빛을 찾아보았건만..
찢겨진 봉창너머로 무뎌진 빛이라도 있었음,하며 찾아 보았건만...
두 눈에 맺혀 흐르는 눈물탓이련가..
세월에 흐려진 눈자위 탓이련가..
아 !
끝내 보여지지 않던 빛..
종내 찾을 수 없던 빛..
아니 ...
빛은 아예 없었던건 아니었을까..
별이 스러진다.
스러진 별 위로.. 내가 스러지고..
이내 설디 설운 사랑이 스러진다.
삶은 그저 한낱 꿈일 뿐이라지 않았던가.
태어난 것은 모두 죽게 되어 있노라지 않았던가.
강물은 가을 산들 바람에 잔물결 치고 꽃들은 아직 만발하여 있건만
새들은 내곁 가까이 날지 않으니
그들이 날 보지 못하고
그들이 날 알지 못함이랴..
아!
날 세운 비수로도 끊어내지 못하는
이 나락의 길..
어느 길이 끝없는 삶의 길로 날 이끌리오...
어두운 빈 밤 너머로
별이 스러지고..
사랑이 스러지고..
내가 스러져 간다.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이상이며 현실은 무엇이더냐? 밤은 꿈으로 이어지고 꿈으로 이어지는 밤엔 또 꿈을 꾼다. 그렇게 밤마다 숱한 꿈들을 꾸다 보니 이젠 어떤게 현실이고 어떤게 어둠속에서 꾸어진 꿈조각들인지 알 수 없다. 내리 사 나흘을 두고 추적대던 비.. 오락 가락 하던 비.. 줄기차게 퍼붓던 비.. 빗소리에 꿈에서 깨이던 밤.. 두 두 두 둑! 두둑이던 낙숫물 소리에 또 다시 꿈속으로 빠져 들던 밤.
그 밤엔 또 어디로 향하던 길 위였더냐. 내리던 어둠과 흩뿌리던 빗속을 뚫고 미친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속도계는 빗길이건만 시속 백 오륙십을 넘나들었고 앞도 잘 보이지 않더라만 스쳐지나가던 갓길엔 갈길 몰라 서성이던 암탉 한 마리 우왕 좌왕 하더라. 닭장 안에 있을 때 닭이지 낯선 길위에서 서성이던 목에 털이 다 빠져 나가 흉물스레 보이던 암탉은 괴물이더라. 아니라.. 어찌타 씨암탉이 나의 눈에 괴물로 보일소냐.
올곧게 닭장안에 쑤셔박혀 있다 닭고기 가공 공장으로 갔더라면 통닭거리도 되고 백숙거리도 되고 도리탕 거리도 되어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돋워낼 너 아니겠더냐. 너는 얼마나 귀하듸 귀한 존재였더냐. 그 옛날 먹거리가 없을 때에 터억 허니 닭알 하나 뽑아내면 높으신 양반 귀한 밥상머리에 올라 앉아 환대를 받던 너였고 백년 손님이라는 사위녀석들 처갓집에 가면 장모님 버선발로 달려나와 잡아준다던 너 씨암탉이 어찌 괴물일손가.괴물은 나이네라. 어둠속 빗길을 뚫고 눈에 핏발을 곤두세워 밤과 어둠에 올라타 일로 일로 남으로 남으로 달려가는 내가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라면 괴물 아니겠더냐. 스르르 날개옷을 벗고 내품에 와락 안겨오던 여인을 얼싸 안아 볼게냐..
사랑하는 법과 용서하는 법도 모르고 산다.

눈물도 메말라 버렸습니다.
슬픔도 메말라 버렸습니다.
분노도 메말라버리고 아픔만이 새록 새록 싹터갑니다.
퍼부어 대는 빗속에 나가 주질러 앉아
별도 달도 없는 먹장같은 야속한 밤 하늘일망정 올려다 보며
발가벗기운 채로 퍼부어대는 비나 맞고 싶었소이다.
한동안 뜸했던 알콜의 힘에 의지하여 마구 지껄여 대봤습니다.
그냥 들이 부었습니다.
떠나시려 함이 여겨지던 근간--
나의 사랑이 아니요
나의 삶같이 비굴하지도 아니하고
나의 영혼같이 추악함에 찌들지도 아니하고
삶과 사랑과 현실을 온전히 받아내시는 이
그 고우실 눈으로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보시는 이
그런 고결한 이에게 입만 열면 구린내 진동하는 입으로
무슨 불결한 말들을 해댔습니까
세상에는 이렇게 아름답게 사시는 분들도 계심을
그저 가슴 시린 눈으로나마 대할 수 있었음을 기쁨으로 간직하여야 함에도..
그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홀가분히 떠나시게 해드려야 함에도

가슴은 썩어버려
홀연히 그냥 떠나버리신다면 남은 가슴으로는 그나마 온전히 살아 숨마저 쉬기가 버거울 것임에
또 다시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아픔에 울지 않을 수 있읍니다.
우린 사랑으로 태어났다 했습니다.
하여 우린 사랑이라 하더이다.
함에도 사랑하는 법보다는 용서하는 법 부터 배워야 한다 함은
사랑은 손쉬워도 용서는 그리도 어려운 겐가 여겨짐에서 입니다.
내겐 사랑하는 법 도
내겐 용서하는 법 도
낯설기만 합니다.
있다는 건 무엇이고 없다는 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산다.

있다는 건 무엇이고 없다는 건 무엇이뇨.
있다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는 전능하신 이고
없다는 건 그분이 창조하셨음에도 없는 나다.
없다는 건 그분이 창조하셨다는 나임에도 나는 없다.

생명이란 유한 하다는 걸 모를리 그 아무도 없으리라만
영원히 살 줄 알고 연연해 하는 군상들은 슬프다.
영원히 살지 못한 다는 걸 아는 나는 기쁘다.
나는 없다는 걸 아는 나이기에 기쁘다.
무한한것 같은 우주도 언젠가는 생을 마감 할 터
유한한 생명을 두고 어찌 연연해 하랴.
가자! 우리 같이 가자.
밤은 꿈으로 이어지고 내가 꾸는 꿈은 어둠으로 비롯되는 구나.
밤과 꿈이 엮어주는 어둠 그 속으로
우리 연인이 되어 한번 뒹굴어나보자.
밤과 꿈이 달콤하듯 꿈과 어둠 또한 달콤하지 않겠드냐.
오너라 너는 꿈을 꾸고 나는 어둠 그 속으로 빠져보자.

어둠속에는 아무도 없더라. 무도 없고 유도 없더라.
무한도 없고 유한도 없더라. 전지 전능도 없고 영생 불사도 없더라.
참도 없고 거짓도 없더라. 하여 나도 없고 너도 있을 수 없더라.
어둠속에는 어둠만 있더라. 그 어둠속을 헤메는 나만 있더라.
어둠속을 헤메는 나는 보이잖더라. 어둠속이기에 보이잖더라.
어둠속에는 어둠만 있더라. 빛을 찾아 헤메이는 어두움만 있더라.
그 어두움도 생을 마감하니 없더라.

있다는 건 무엇이고 없다는 건 무엇이뇨.
어둠속에서 내미는 손 있더라. 하이얀 손 어둠속에서도 빛을 발할손가.
하이얗기에 어둠속에서도 하얄손가.
어둠속에서 내밀던 하이얀 손 덥썩 잡았네라
악마의 손일지라도 붙들었을 고웁던 손 잡고 뺨에 대고 부벼보고
입마춤 해보고 가슴에 안아 보고 품어 보고
신이 존재하시듯 악마 또한 존재할 듯
오소서! 악의 신이여! 내 영혼 얼마 주시겄소.

내 팔으리라.
내 이 더럽고 추잡하고 오욕에 절어 없고 싶은 영혼 팔터이니 사가시오.
내 그판 돈으론 유한한 사랑을 사보리다.
후르륵 타다 꺼져버릴 사랑일지라도 사보리다.
종내에도 없을 사랑에 나의 영혼마저 팔으리다.
아! 악의 신도 속누나..내 영혼은 없었는걸..
잘 팔았다, 잘 팔았다. 그만 하면 후하디 후하다.
후르륵 타고 남은 재나 될 사랑에 이내 영혼 팔아 불태워 보려건만
서운찮다. 애석찮다. 서운찮고 애석찮은 건..

속였구나 속였구나, 악의 신도 속였구나.
있다는 건 무엇이고 없다는 건 무엇이뇨
애시당초 내겐 영혼마저 없었는 걸..
타조를 길들여 타고 다닐 수 없을까 궁리하며 산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타조 농장이 있는데 이참에 타조새끼 한마리 사다 키워볼꺼나? 이왕이면 다홍치마 란다고 암년으로 말이닷. 다 자란 타조는 무척이나 컸다. 그놈을 길들여 타고 다닐 수 있을런지 궁금하다. 그 옛날 말 타고 다니던 시절에 네 발 달린 자동차를 보고는 얼마나 신기해들 했던가. 이제는 말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도 있을 라 치면 그야 말로 신기한 볼거리 아니던가. 소 타고 장 다니는 사람이 구경거리가 되듯 타조를 키워 타고 다니면 신기한 볼거리가 충분치 않겠는가.
척! 하면 삼천리요, 쿵! 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듯, 나는 야 처억허면 무모하기 이를데 없는 "돈키호태"조! 아닐소냐. "돈키호테"가 타고 다니던 애마가 "로시난테" 였단담 타조를 길들여 타고 다닐 수 있단담 고년 이름은 의당 "타조난테"가 되렸다. 세상에 회자 되는 명화를 보노라면 말 없는 엑스트라와 훌륭한 조연이 있어 영화가 살고 주연이 뜨진 않더냐. "타조난테" 덕에 터억허니 뜨진 않겠더냐..허지만 오늘날 "돈키호테"는 죄들 알아도 그가 타고 다녔다는 애마 "로시난테"는 아무의 뇌리 속에서도 기억되지 않는다만 "로시난테"고 "돈키호테"고 간에 둘이 짤떡 같이 궁합 하난 잘도 들어 맞았는지도 모른다.
무모의 대명사 돈키호테" 랄 지라도 그의 애마 "로시난테"가 좀 덜 무모했다던가 주인의 말에 거스르기라도 했었단담 오늘날 "돈키호테"고 "로시난테"고 존재치 아니하였을런지도 모를 일이긴 하듯 이참에 타조를 키워 "타조난테"란 이름을 지어주어선 아니 타고 다닌단담 "돈키호태조" 일 순 없을 터..아! 그란디 돈키호테가 타고 다녔다는 로시난테는'가짜 말 이고 내가 키워 타고 다니며 이름 붙여주는 타조난테는 정 말 일게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돈키호태조"가 "타조난테"를 타고 다닌담 처억 허니 뜨는 건 둘째요..기름 한 방울 아니 나는 내 나라 내 땅 금수나 강산에 얼마나 보탬이 되고 유익이 될 것이며 매연에 대기가스에 하나 밖에 없는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던데 지구에도 일익을 담당하진 않겠더냐..이건 나라에서도 상 줄 일이고 세계 환경단체에서도 초빙하고 난리 법석들을 부릴 일이 되진 않겠더냐..타고 다닐 수 있다면 모두가 말 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게다. 비유가 좀 이상킨 하다만 집에선 언제나 탈 수 있다며 자가용이라 말 하고 밖에서 탈 수 있노란건 영업용이라진 않더냐. 영업용은 돈이 들어 시답잖고 자가용은 공짜건만 식상하다지만 말을 타고 다니든 93년식 르망을 타고 다니든 타조년 길들여서 타고 다니든 해본단담 탈것도 마뜩 찮은 내게 훌륭한 애마가 되어주진 않겠더냐.
아 또 그란디..나의 93년 식 애마 르망은 아모리 밟아대도 180 밖엔 아니 나가 주더라. 중부고속도로에서 있는 데로 밟아 댔는데 쌔엥 하고 추월하는 년 있어 눈 바라기 해보니 "세피아"더라. 오살헐 년 같으니라구..
아 쥔 넘이 쪼매 몽매 하다기로 서니 있는 데로 밟아 줬는데두 추월을 당혀 쥔 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혀게 했어야 옳은겨? 그러하니.."타조난테"가 월매나 가속도를 내줄런진 모리겄다. 이젠 똥차가 되어버린 내 르망보단 쪼매 빠른 시속 200?..뉘 아시는 이 읍슬겨? "돈키호태조 "의 시속을,,,

미몽과 운몽과 환상과 혼돈과 나는 누구이며 누구이어야 하며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알려 하지 않고 산다.
있다는 건 무엇이고 없다는 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
콧소리를 듣고 싶어 산다.
비릿한 젖 내음 감도는 따사로운 무덤에 코 박으면
단내 나는 입에선 안돼! 안돼! 안된다고 기 쓰다가도
나긋한 허리 조여 보다
실팍한 둔덕밑 조르르 흐르는 샘에서 목 축이다 보면
거칠게 안돼! 안돼! 하던 소리가
아! 돼! 아! 돼! 코멩멩이 소리로 바뀔게다.
열에 들떠
돼돼돼돼..... 하게될 게다.
그 소리를 듣고 싶다.
열반에 드는 소리..
***음악에 잠길 때에***
음악이란건 참으로 알 수 없어
애잖한 곡이 흘러라도 나올라 치면
끝이 보이잖는 강바닥으로 가라 앉아 버리는 것 같고
비릿한 슬픔이 베어 나오는 듯한 음악에는
그여코 눈물 한자락 떨구어 내고 말게 되며
또 어떤 노래는 목 터져라 따라 불러보고 싶게도 해
홀로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 청하다
잔잔한 음악이라도 내귀를 기웃이면
이미 홀로인 게 아니게도 해
꽃이 만발한 들길 산길을
손 맞잡고 뜨거운 가슴 부여 안고 거니는 것 같게도 해주고
비릿한 젖내음이 달콤하기만 한
풍만한 배위에서 뱃놀이를 하는 듯한 안락함도 줘
음악도 삶의 일부인 것 처럼
여체위에서 젖무덤에 묻혀보는 것도 삶의 일부일게야
흙 무덤 보다는 젖 무덤에 묻히고 싶어
알 수 없어..
젖 무덤에 묻혀서 젖과 꿀을 탐할 때에
슬픈 음악이 슬플런지..
탈을 쓰고 산다. 위선으로 산다. 거짓과 모순으로 산다. 허위와 가식으로도 산다.
***탈***
벗어버리고픈 탈을 쓰고 산다.
위선과 허구의 탈,거짓과 사악의 탈,
몽매의 탈을 쓰고 산다.
내 육체는 이미 그 쾌락의 깊숙한 단맛에 길들여져
벗어버리고픈 맘관 달리 쉽사리 벗어버리지 못한다.
시들어가는 육체야 어이 하랴마는 병들어 가는,썩어 가는,
아니,이미 썩을 대로 썩어서 시궁창 썩는 냄새로
숨조차도 쉴 수 없는 저주 받을 영혼은 어이 하랴.
손만 내밀면 날 구원하실이가 쟤 계시건만
손마저 내밀어볼 염두도 상실되어 가고 있다.
벗어버리고픈 탈을 쓰고 산다.
벗어버릴 수 없는 탈을 쓰고 산다.
벗어버리려니 누군가 벗겨낼까 그마저 두려워
늑대의 탈을 하나 더 쓰고 산다.
양의 탈을 하나 더 쓰고 산다.
하나 더 얹어 쓴 양의 탈로
나는 어젯밤도 왼 밤내 그리운 이를 농락하다
끝내 범접하고 말았다.
거울을 깨트리고 산다.거울속에 사내 하나
나는 어디로 가고 왠 낯선 사내 하나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추하고 가련하고 가증스럽기도 해서 깨트려 버렸다.
화장대위에 있어야 할 받침 동그란 손 거울
이,저리로 내뒹굴다 밟아 깨졌다.
귀밑머리 희어지는 것만 보여 잘 보지 않는 거울이건만
내다 버리기 아까워 그때 만이라도 들여다 보는 깨진 거울..

그속에 내가 있었다.
거울을 들여다 보며 살지 않는 내 눈이 깨어진 채로
말을 잊고 사는 내 입이 깨어진 채로
내 영혼이 깨어진 채로--
깨어진 거울에는 깨어진 모습만 보이고 흐릿한 거울엔 흐릿한 모습만 보일게다.
득도하려 고행하다 도 깨우자고 고매한 선사 찾아 산방엘 들었더니
선사는 없고 명경지수 같은 거울 앞에 조용히 합장하고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깨달음 얻었다는 어떤 스님의 일화---
깨어진 거울 내다 버리고
해맑은 거울 앞에 앉아 보자.
흐릿한 거울 맑은 물로 닦아 내야 맑은 모습 비춰내듯
세속에 찌든 때 닦아내고 거울 앞에 앉아 성찰해보자.
게 누구냐고---
기쓰고 산다.
생명의 근원인 것. 모이고 흩어지는 데 따라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
정기,취기,분기,노기,욕기,심기,,허기,총기....
추욱 늘어진 곳추가 일 주일에 두 어번이라도 곧추서길 염원하며 氣를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 없다며 기쓰고 산다.
생과 사가 둘이 아니요 이승과 저승이 다를 바 없다는 말을 믿으며 주검 저편 너머를 가보고 싶다며 산다.
**죽음 저편 너머***
언젠가는 맞이할 죽음 저편 너머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구료.
미리 볼 수 있단다면 보고 싶어지고
가볼 수 있노란다면 가보고 싶어지는 구료.
북망산으로 가 차가운 흙무덤에 묻히기 전에
터질듯 풍만한 젖무덤에 코를 박고 묻혀서라도..
삶도 죽음도 찰라 일진데
아등 바등해도 잘 살아지는 삶이 아니던 터
연연해 하지 않고 초연해하며
오히려 태연자약히 가보고 싶어지는 구료.
살아 생전엔 가볼 수 없는 곳
불귀의 객이 되어 구천을 헤메면서도 알 수 없는 곳.
죽음 저편 너머 그곳은 어듸메뇨.
청산일꺼나 별곡일꺼나...
신이 되고 싶어 거미를 키우면서도 산다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거미의 종류는 대략 600 여 종이나 된다한다. 그 많은 종류들 마냥 이름도 가지가지로 게중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거미도 있더라. 아기늪서성거미, 민갈거미, 왜종 꼬마거미, 말 꼬마거미, 대륙접시거미, 집 새우게거미.별 늑대거미, 무당거미, 그늘 왕거미, 산 왕거미, 기생 왕거미, 집 왕거미, 휴,,,,,,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다만 거미에 대한 설화와 전설도 많더라. 거미가 집안에 나타나는 시점에 따라 길흉을 점치는 속설이 있는데 아침 거미는 길조로, 저녁 거미는 흉조로 보았다나?. 《서경잡기》에도 “아침 거미는 기쁨, 저녁 거미는 도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더라. 경북 달성에는 거미의 복수설화가 전해오고 있다는데. 나무꾼이 거미를 밟아 죽었는데 그 후 부인에게 태기가 있더니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다 자라도록 어미의 젖을 놓지 않아 지나던 노승이 이를 보고 “그 아이는 죽은 거미의 화신으로 부인을 말려 죽일 것이다”라고 하여 아이를 죽였다는 줄거리이다.
비슷한 설화가 전국 여러 곳에 전한다. 자신의 몸에서 실을 자아내는 창조능력을 인지하고 있으며, 고대인은 거미집을 보고 그물을 고안했다고 전한다. 동양사상에서 거미는 운명의 실을 짜는 자로 우주거미의 거미줄은 천망(天網)을 상징한다. 여러 민족간에는 거미에 관한 많은 전설이 있다.
인도나 북아메리카 및 아프리카 원주민의 신화에서는 거미가 창조신 또는 영웅신으로 등장한다. 인도에는 거미가 짠 직물로 섬이 되었다는 신화도 전해오고 있다. 뉴멕시코 인디언의 전승에서는, 인류 등 모든 생물의 시조인 거미가 만들어 낸 불을 이리가 훔쳐 인류에게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형태가 징그럽고 요물스러운 동물로 여기고 있어, 사람으로 환생하였다거나 천자를 탄생시켰다는 신비성과 음험한 성격을 나타내는 민화와 실을 뽑는 신기한 재주를 인식한 민요 등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동의보감》에 고환염(睾丸炎) ·결핵성 복막염 ·코피 ·절상(切傷) 등에 약용한 기록이 있다나?
백과사전 까지 들춰가며 이리도 장황하게 거미 이야기를 늘어놓게 된건 자지러지는 듯하던 아해들의 비명소리에 뒤 이어 니가 밟아버리라니 언니가 하라느니 큰 언니가 함 어떻겠냐니 화장지로 꾹 눌러버리라느니 말들의 잔치만 요란했지 서로에게 미루느라 법썩을 떨어대던 소리탓이었다. 나는 또 오줌싸개가 어디서 나와 기어다니나 싶어 왜그러느냐며 나가보았더니만 거미라며 이불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미였다. 무슨 종인지 확실힌 알 수 없지만 시커멓게 생겨가지고 밤거민 근심거리라며 보는데로 밟아 죽여버리던 거미,,거미줄을 치지 않는 거미도 있으려나? 가끔 가다 기어다녀 그때마다 밟아죽여버리던 거밀 관찰좀 해봐야겠다며 잡아선 유리병에다 넣고설랑 두고 보기를 벌써 1주일째다.
유리병이 미끄러운지라 오르단 쭈욱 미끌어지고 또 오르단 미끌어지는게 유리병은 이미 유리병이 아니고 거미에겐 거미 귀신이 되어버렸다. 오르고 또 오르는 힘겨운 노릇이겠건만 재미있다 보아내는 나도 거미에겐 귀신이다. 사괄 깍아먹고 껍질을 넣었더니만 초파리가 생겨 그놈을 잡아먹고 살련가? 방 바닥이 따스허니 습기가 생겨 유리병에는 물기도 촉촉허게 베어있었다.
고놈이 어찌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이리저리 흔들어봐도 꿈쩍도 아니하더라. 죽었나 싶어 손가락을 넣어 옆구릴 콕 찔러봤더니만 움찔하던게 이즉 죽진 않았고 탈진하여 그리했었나? 곤충 애호가들이 혹여라도 본다치면 멱살잡인 아니하려나? 거미에게 신이 되고자퍼 실을 내려보았다. 거미에겐 이미 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만이 내려주는 생명줄인게다. 거미에게 생명줄을 내려준 나는 고로 신이다. 타고 오르는걸 실을 놓아버렸다. 생명줄은 거미와 함께 다시 유리병 속으로 나동댕이 쳐지고 말았다. 거미에게 있어서 난 이미 신이다.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위대한,,
거미가 불쌍하다던가 가엾다던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재수없다고 콱! 밟아 죽이지 않는걸 보면 난 박애주의자 이기도 하진 않겠는가? 그저 한갓 재미있는 놀음이기도 하고 고놈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게 희열이기도 하고 나는 위대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신은 얼마나 위대한 존재라지 않더냐?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대고 섭리자이시며 주관자 이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이라지 않더냐? 절대자 이시며 무한하신 이라지 않더냐?
나는 거미이고 신은 또한 나는 위대하다며 내게도 생명줄을 내렸다 내동댕이 쳐버리진 않았을꺼나,,,허지만 거미가 날 원망하지 아니하듯 나 또한 신을 원망하지 아니한다. 구차하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도 하지 않는다. 풀이 누웠다 온대로 가듯 나 또한 누우면 온대로 가지 않겠는가? 영이 없으면 몸은 이미 죽은 것이라 했으니 영은 몸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이어늘 내겐 이미 없는 영인지라 이미 죽은 몸,,허니 어찌 죽음이 두려울게며 북망산을 가지 않으려 헛된 발버둥을 맥빠지게 쳐댈손가,,허니 난 신이 두려웁지 아니하다..나도 신인걸,,거미를 들여다 보는 순간 순간마다엔,,,

감꽃 목걸이를 목에 걸고

1.감꽃 목걸이를 목에 걸고..
가을!하면 떠오르는 동화같은 정경들이 많습니다.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쪽빛하늘.바람이 머물고 있는 코스모스의 하늘거림. 뉘집 고추장을 단지채 다 먹어치운 듯한 고추잠자리.알알이 잘 영근 벼들이 황금물결을 이루는 들녁.그러나 그중에서도 아스라한 추억으로 떠오르는 가을의 정경은 무엇입니까.

내 어릿적 소꼽친구였던 시월이네 집. 그집 마당엔 동네에서 유일하게 감나무가 두 그루 서 있었는데 감꽃이 필제면 동네 꼬마 녀석들이 아귀다툼 하듯 몰려들곤 했었습니다. 먹거리가 없던 때 밤새 떨어지는 감꽃은 훌륭한 먹거리였고 그걸 실에 꿰어 목에 걸고 자랑스레 나다니며 한 잎씩 빼먹는 맛은 꿀맛이었습니다. 조금만 늦게 가도 감꽃들은 이미 남의 수중에 가버리는지라 새벽같이 일어나 눈부빌 여지도 없이 달려가곤 했었습니다. 수 많은 세월이 흐르고 또 흘렀어도 희미한 기억 저편 너머 아스라이 떠오르는 것들,대문이 없었던지라 누구라도 먼저 도착해 줍는게 임자였었던 감꽃. 감꽃을 많이 주은 날이면 치렁치렁 만든 감꽃 목걸이를 목에 걸고 친구녀석들 집 주위를 뱅글뱅글 돌던 기억. 고스란히 걸고만 다니다 누구라도 보일라치면 하나씩 빼먹으며 자랑스레 골목길을 휘젓던 기억.헌데 언젠가 부턴 나만 들어오지 못하게 해 울분이 치솟았던 기억. 눈물을 뿌리며 언젠가 톡톡히 복수를 하리라며 입을 앙다물었던 기억.
오 뉴월 뙤약볕에 알알이 익어가다 가을바람에 짓물러 터질 것 같은 무렵이면 행여나 혹여나 감떨어지길 학수고대 하며 감나무밑에 진을 치던 기억.그때마다 감나무 밑에서 감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게냐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말이 먼 말인지 의미를 모르던 시절.기다려도 기둘려도 아니 떨어지던 감.급기얀 해지고 어둠을 사르던 등잔불도 꺼지면 기인 장대 하나 움켜쥐고 감 털러가던 기억.어찌어찌 우여곡절 끝에 감은 털었건만 울안에만 떨어지지 손아귀안 쥐어지지 않아 입맛만 쓰라리던 기억.이 궁리 저 궁리끝에 장대끝을 갈라 나뭇가지를 끼워 만든 틈 사이로 감나뭇가지를 걸고서야 첨 먹어봤던 감맛이 꿀맛같았는데 정작 그때까지 꿀맛은 알지도 못했던 시절.



매듭 묶는 법



안전벨트에 직접 묶을 경우 선등자 용이나 카라비너를 이용하여 중간 매듭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며, 또한 가장 강한 강도의 매듭으로 강한 충격에도 쉽게 풀수 있는 장점이 있다. 등반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매듭이기도 하다. 8자 매듭은 선등자용 되감기 8자 매듭, 중간 등반자용 8자매듭, 두 줄을 연결할때 사용하는 되감기 8자매듭 이 있다. 8자 매듭은 충격이나 얼었을 때에도 쉽게 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카라비너에 직접 연결할 경우나 안전벨트에 직접 매듭을 할 경우에도 매듭의 고리를 가능하면 작게 만드는 것이 좀 더 안전하다.






매듭법 중에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매듭으로서 많은 변형이 있고, 또한 순서도 여러 가지가 있다.
선등자 매듭으로 로프에 직접 매듭을 하거나, 나무나 움직이지 않는 고정 확보물 등에 매듭을 할 경우에 많이 사용한다. 또한 안전벨트가 없을 경우 가장 빠르게 몸에 묶을 수 있어 임시용으로 잠시 매는 매듭으로 많이 사용한다. 일단 매고 난 뒤에는 잘 움직이지 않아서 선등자나 후등자가 종종 매듭을 사용하지만, 매듭이 뒤집어 질 경우 에는 쉽게 풀릴 수 있는 단점이 있어 반듯이 정확하게 매듭이 되었는지 확인하여야 하며, 끝은 반드시 옭매듭 처리를 해주어야 한다.



두 줄을 연결할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매듭으로 가장 확실한 매듭이며 어부매듭으로 불리우고 낚시줄을 묶는데
에도 많이 사용한다. 이 매듭의 특징은 힘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단단하게 매듭이 되는 점이다.
이때문에 충격을 받거나 얼었을 경우에는 풀기가 힘든 단점이 있다. 잘 풀지 않는 곳에 매듭을 한다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매듭이며, 매듭의 모양이 예쁘기 때문에 선호하기도 한다. 또한 가는 코드 슬링을 연결할 때 많이 사용된다. 배낭 멜빵에 예쁘게 코드슬링으로 고리를 만들어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으며 배낭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때 종 종 잡아당기는 고리로 사용할 때 좋다.




나무나 고정된 확보물에 매듭을 할 때 주로 사용되며, 당기면 당길수록 힘을 받으며 풀 때에는 긴 줄 쪽으로 고리를 당기면 쉽게 풀 수 있다. 몸에 직접 묶으면 조여지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으며, 안전벨트에 카라비너를 이용하여 묶어야 한다. 얼었을 경우에도 쉽게 풀린다.
플라이나 걸개를 걸때 고정된 곳에 묶을 때 편리하며 미리 고리를 만든 후에 높은 곳으로 올리기에 편해서 한쪽은 에반스 매듭으로 처리하고 다른 한쪽은 까베스탕 매듭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비상용 매듭으로 많이 사용되며, 반드시 굵기가 다른 줄 간에 사용되어야 하며 주 로프보다는 가는 5~7mm 정도 의 가는 코드 슬링을 이용하여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초보자의 하강시에 푸르지크 매듭을 이용하여 하강기 위쪽에 걸어서 보호 장치로 사용할 수 있으며 두개의 푸르지크 매듭을 이용하여 등강기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상매듭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두개의 푸르지크 매듭을 이용할 경우에를 대비하여 가는 코드 슬링이 여러개 가 있으면 비상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단독 등반시에도 솔로이스트가 없을 경우 임시방편으로 사용할 수 있다.




양쪽의 줄을 고정할때 쓰이는 매듭으로 반까베스탕을 사용시에는 매듭을 한 상태에서도 길이를 조절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등반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매듭이다. 쉽고 빠르게 매듭을 할 수 있으며, 또한 힘을 받거나 얼었을 경우에도 쉽게 풀 수 있다. 로프를 잠깐 고정 확보물에 묶어 두거나,등반 중에 자기 확보를 할 경우에 많이 사용되며 끝줄을 이용하여 묶 을 경우에는 반드시 옭매듭으로 마무리 처리를 해야 한다.
우면서도 의외로 헷갈리기 쉬운 매듭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며, 반 까베스통 매듭과 함께 익혀두면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등반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매듭이지만,간단히 매듭을 할 수 있고 편리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되며 사각매듭이라고도 한다 매듭하기 쉽고, 풀기 쉬운 장점이 있는 반면에 쉽게 풀릴 수 있어 정확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주의점은 매듭시 로프의 끝이 같은 면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엇갈려서 매듭을 하였을 경우에는 가벼운 움직임에도 쉽게 풀어져 위험 할 수 있다. 스퀘어 매듭을 이용하여 두줄을 연결할 경우에는 더 확실하게 하려면 양 끝을 이중으로 옭매듭하는 것이 확실하다.



테이프 슬링을 묶었을 경우에는 매듭을 한쪽에 한 후에 면을 따라서 꼬이지 않도록 하여 매듭을 한다.
테이프 매듭의 단점은 사용하지 않을 경우 시간이 지나면 풀릴 수있기 때문에 사용하기 전에 반듯이 매듭을 확인하여야 하며, 매듭의 끝이 항상 4~5cm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모든 매듭의 기본이 되는 매듭으로서 흔히 막매듭,OverHand Knot으로 불리운다
8자매듭으로 선등자,후등자용 및 두줄을 연결할 때 피셔 맨 매듭과 스퀘어 매듭으로 두 줄을 연결할 때 선,후등자가 보울 라인 매듭을 사용할 때, 에반스 매듭을 사용할 때 등 여러가지 매듭을 하고서 마지막에 옭매듭을 하여서 매듭이 풀리는 것을 예방한다.




과거에는 동그랗게 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나비처럼 양옆으로 벌려서 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그랗게 사리는 법은 줄을 메고 가기 편리한 점이 있다. 줄의 마감 처리는 사각매듭으로 묶거나 짧게 남은 줄로 미리 고리를 만든 후에 그 위로 고리에서 먼쪽부터 긴 줄을 감은 후 남은 끝줄을 고리에 끼운 후 반대편에서 당기면 된다. 배낭이 없을 경우에는 사린 줄의 양쪽 끝을 약 1미터 정도 다시 푼 후에 사려놓은 가운데 부분을 돌려 감은 후에 어깨에 올려 맨 후에 허리로 되감아서 매듭하면 편하게 들고 갈 수 있다.




필요하신분은 글을 남기지않아도 쾒찬아요,,
유용하게 쓰세요...

[출처] 매듭 묶는 법


숲가꾸기의 당위성과 가식성에 대하여

1.경제발전을 이루게 된 원동력은 치산녹화때문이었다.
왜넘들의 수탈과 동족상잔의 비극속에서 삼천리 반도 금수나 강산이었던 우리의 산하는 벌거숭이 민둥산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었다.먹거리가 없어 풀뿌리 나무껍질을 벗겨먹고 땔감이 없어 낙엽까지 긁어댔던 그 아팠던 기억이 새롭다.나무를 심고 가꾸는 길만이 살길이라며 치산녹화에 온힘과 정성을 쏟은 결과로 우리는 오늘날 세계에서도 일찌기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조림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2.숲가꾸기의 중요성과 필요성
숲가꾸기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침이 없다.울울창창 쭉쭉빵빵 잘 자란 나무들을 보라.푸르르다 못해 짓푸른 신록은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뚤리는 듯 상쾌감과 편안함을 안겨준다.그러나 단지 그것뿐이랴.숲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무궁하고 숲이 주는 혜택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다.하여 나무만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산림청의 존폐가 회자되고 있는 현실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매한 처사다.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나마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을 정책에 도입한 처사는 무척 고무적이다.자원빈국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재생해서 쓸수 있는 무한한 자원이 되어주는 나무야말로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시책과 따악 들어맞지 않은가. 하여 산림청에서도 기후변화에 따른 산림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3.기후변화 협약은 무엇인가.
하나밖에 없는 지구가 온실가스로 인해 몸살을 앓고있다.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자멸이요 공멸뿐이다.지구온난화로 해마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보고있지 않은가.하여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고자 범세계적으로 노력하고자 온실가스 감축협의가 있었다.나무들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수치로 계산하여 탄소배출권을 사고 팔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숲가꾸기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차고도 넘치는 게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인 도랑치고 가재잡고 뽕도 따고 임도 보는 것이다.
4.왜 목재인가
숲에 들어서면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인간의 유전자속에는 숲에서 살던 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했다.숲은 희망과 꿈을 잃고 살아가는 도시민에게 꿈을 꾸게 하는 곳이라했다.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보라.어딜가나 주검의 색 회백색뿐인 삭막한 아파트에 둘러쌓여 숨 한번 올곧게 쉬고 살수 없게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흙에서 온 존재라면서도 맨땅 한번 밟아보는 것 조차 여간해선 힘든 삶.사안이 그렇다보니 천형의 사슬이 되어버린 아토피며 각종 암이라든지 온갖 문명병들로 인하여 고통받는 군상들은 슬프다.
시멘트의 원료가 되는 석회석은 이산화탄소를 고정하고 있다더라.헌데 시멘트를 생산하고자 열을 가하면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킨다니 이제라도 콘크리트 문화를 목재문화로 바꿔야될 싯점이 아니겠는가.친환경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 나무를 이용하는 길만이 지구를 살리는 길이며 그 길만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지 않겠는가.하여 대대적으로 목재사용운동을 펼쳐나가고 있으며 목재이용의 다양한 방안도 시행되고 있다.
5.낙엽송은 할말이 많다
우리 강산을 푸르게 한 일등공신의 반열에 둘 수 있는 낙엽송이었음에도 한때 천대를 받았음은 왜서인가.우람하게 잘 자란 만큼 베어서 목재로 이용해도 모자람이 없으리라만 산주들에겐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해서 푸념과 넋두리들을 들었고 낙엽송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가시가 있고 너무 단단해 못이 먹질 않는다고 홀대를 당했다.뿌리 또한 직근성이라 큰비가 오거나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뿌리채 뽑혀나가 수종을 잘못 선택했다고 비아냥을 받았던 나무.그러나 쪄서 휘고 틀고 집성목으로 가공할 수 있게 발전된 목재가공기술덕에 낙엽송의 가치는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6.숲가꾸기의 허와 실
숲가꾸기 사업은 많은 일자리도 만들어내고 있다.숲가꾸기를 해서 얻는 간벌재는 건축자재는 물론이려니와 난간이며 산사태를 막기 위한 목책용도로 쓰이며 부산물로는 우드칩이며 톱밥,바이오연료에 그 쓰임새 일일이 말해 무엇하랴.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숲가꾸기 사업은 나로 하여금 실소를 금할 수 없게 하다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은 왜서인가.전시행정인가.아니면사업비가 모자라 한계가 거기까지 뿐인가.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숲가꾸기 이후에 숲속에서 방치되다 종내에는 썩어버리고 마는 간벌재를 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7.덩굴식물로 부터 나무를 살리는 숲가꾸기

덩굴성 식물인 다래와 미역줄나무 만큼 숲을 파괴시키는 난폭자는 없다.습한 곳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지 능선을 타고 흐르는 계곡부에 무성히 자라는 다래와 미역줄나무.일단 그의 마수에 걸리면 어떠한 나무일지라도 그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사업비가 모자라 간벌재를 그냥 숲속에 방치하느니 그런 숲가꾸기 방법은 조금 뒤로 미루고 톱 한자루면 덩굴식물에 의해 죽어나가고 있는 수많은 나무를 살려내는 일도 고민해봐야 할 숲가꾸기 사업의 일환이 되진 않겠는가고...







껍질을 벗겨내도 죽지 않는 나무들

1.황벽나무
알알이 탐스럽게 황벽나무가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꽃이 피면 열매를 맺는 건 진리중에 진리입니다만 6월경 암꽃과 수꽃이 다른 그루에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핀다는 꽃은 여즉 보지 못했습죠. 밀원식물로 적당하다는 말도 들었은즉 무성하게 핀다는 말일터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황벽나무 뿐만 아니라 이강산 삼천리에 자라는 나무들은 모두 가구재며 목공예재로의 쓰임새 뿐만 아니라 뿌리고 껍질이고 열매고 가지고 간에 탁월한 약리작용을 가지고 있는 바 수피와 열매는 장티푸스·콜레라·토혈·중독·임질동상·당뇨의 치료 및 건위제·정장제·수렴제·방부제 등으로 쓰이며 염료로도 쓰이는데 껍질을 벗기면 속이 노랗기에 황벽나무란 이름도 달게 되었겠죠.
아해들과 숲속여행을 하다 그 나무를 보면 만져보라거나 손꾸락으로 눌러보라고 합니다.폭신폭신한 감촉에 모두들 신기해하는 나무. 그래서 영어로는 코르크나무(Cork)라 한답니다. 실제로 코르크 마개를 만드는 원료로 썼다는데 선명한 노란색을 띈속껍질은 다량의 벨베린이란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소염작용을 하며 세균성의 장염 또는 장내의 이상 발효에 의한 설사를 멎게 하며. 껍질을 벗겼을 때 두터울수록 또는 진한 노랑색일수록 더 좋답디다.

질병에 따라 먹는 복용방법도 눈길을 끕니다.습열성 간열 초기에는 온몸이 누렇게 되며 열이 나고 소변이 황색이면 치자와 감초를 더해 쓰며 세균성 이질에는 초기에 열이 나고 복통이 나고 뒤가 마렵지만 잘 안나오는 이급후중(裏急後重)의 증상에는황백에 백두옹,마치현,목향 등을 가해 쓴다.여성 질환에는 자궁이나 경부에 염증이 생겨서 습열이 쌓이고 백대하가 증가하면 황백,비해,검인,차전자를 달여 복용한다.
소변이 줄고 오줌 누는 횟수가 많으며 배뇨통이 있으며 방광에 습열이 심하면 이런 증상이 있는데 이때 비해, 차전자,복경을 더해 쓴다.창양종독, 습진 등에는 초기에 발적,종창이 생겨 가렵고 통증이 있으면 황백, 대황, 천화분을 가루 내어 물로 섞어 환부에 바른다.여름철 습진에는 초기의 가려운 증상과 만성 구분열이 황백에 방풍,백지,금은화,백선피,연교를 넣어 달여서 복용한다.음허발열,골증,도한,유정에는 지모,지황,구판을 가미한다.편도선염에는 가루로 만들어 1g을 물에 타서 목을 헹군다.
그러나 황벽나무가 가지고 있는 놀라움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모 대학강사와 숲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황벽나무를 보더니만 물찬 제비처럼 껍질을 벗겨내는 모습을 보며 한마디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그렇게 홀라당 껍질을 벗겨버리면 죽어버리지 않겠느냐고...그러나 황벽나무는 껍질을 벗겨내도 다시 복원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과 식물복원에 그 껍질을 이용하여 파종을 하면 발아율이 높답디다.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아무때나 벗기면 복원이 되지 않으니 시기를 알아야 한다더군요.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짬을 내어 작년에 껍질 벗겨냈던 황벽나무를 찾아볼 요량입니다.거저 내눈으로 본것만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겠죠.




2.굴참나무
굴피집을 지을 때 썼다는 굴참나무 껍질을 본적은 있지만 껍질을 홀라당 벗겨낸 굴참나무는 지리산 휴양림에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모습을 보며 어찌 혀를 차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마는 굴참나무 또한 수피의 코르크를 벗겨내어 병마개, 압착 코르크판을 만드는데 썼으니 만치 나무의 나이가 15년 가량 되어 코르크 껍질이 두꺼워질 때 부터 껍질을 벗겨낼 수 있답디다. 껍질을 벗겨내고 나서 약 8~9년이 지나면 다시 두꺼운 코르크 껍질이 생기며 나무 나이가 약 40년 가량 될 때까지 벗겨낼 수 있다니 놀라웁지 않습니까. 코르크 껍질은 첫 번째 벗겨낸 것보다 두 번째나 세 번째 벗겨낸 것이 훨 더 좋답디다.



겨울 나그네













신갈나무는 왜 죽었을까?

1.참나무는 없다.
"참"이란 말의 뜻을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실이나 이치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이라거나 명제가 진리인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얼마나 좋은 나무이길래 나무에게 참나무란 이름을 지어주었을까마는 참나무는 없고 도토리가 달리는 나무들은 모두 참나무로 불린다는 말입니다. 대략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로써 6종을 일컸습니다.
갈참 졸참 떡갈 신갈나무는 꽃이 핀 해에 열매가 성숙하지만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는 다음해에 성숙합니다. 나무중에 진짜 나무라 하여 참나무로 불리는 만큼 참나무만큼 실생활에 유익한 나무 또한 없을 것입니다.나무껍질에 타닌 함량이 많아 바닷가에서는 어망을 물들이는데 사용했답니다.
독일에서는 좋은 참나무 한 그루 값이 벤츠 한대 값과 견줄 수 있다하니 얼마나 귀히 여지는지 알수 있잖겠습니까. 포도주나 위스키를 숙성하는데 쓰이는 오크통 또한 참나무로 만든 것입니다.속명의 퀘르쿠스란 켈트어의 ‘좋은 목재’라는 뜻입니다.떡갈나무의 잎은 크고 두꺼우며 향기가 있어 떡을 찌거나 싸는 데 사용했습니다.굴참나무에서는 코르크와 굴피집을 짓는데도 이용되어왔습니다.
2.들판을 보고 자라는 나무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의 의미를 아시리라 믿습니다.말대로라면 좋은 나무는 목재용으로 버여져나가고 못생긴 나무만 산에 남는다는 의미겠지만 그 외에도 여러 의미로 쓰여져왔던 속담입죠.허나 이제는 등 굽은 나무가 조경용으로 쪽쪽 뻗은 나무보다 훨 비싼값으로 팔려나가고 있으니시대의 흐름앞에 변하지 않는건 없나 봅니다.
그러나 시대가 아무리 흐르고 흘러 변하고 또 변한다할지라도 들판을 보고 자란다는 속설을 가지고 있는 나무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토리는 우리에게 무엇이었습니까.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추위와 허기를 달랬던 시절.소나무껍질을 벗겨 먹었기에 똥꼬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때 도토리는 허기를 달래주던 구황식물이었습니다.그 도토리가 많이 열리는 해는 기근이나 흉년이 든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도토리가 꽃이 피어 수정을 할 무렵 비가 많이 오면 농사가 잘되는 반면 도토리는 수정이 되지 않을테니 도토리가 많이 열리는 해는 반대로 농삿철에 가뭄이 들었던 탓 아니겠습니까.그러니 들판을 내려다보며 자란다는 속설은 속설로 그치고 마는게 아니라 기상학적으로도 근거가 있었던 말 아니겠습니까.
민초들의 삶과 뗄래야 뗄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해왔던 만큼 참나무는 소중하고 귀한 나무임에 틀림없겠지만 그럼에도 천대와 수난을 받았던 까닭은 무엇입니까.청태산 숲체원내엔 특히 오래된 신갈나무가 많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곳에도 예전엔 화전민들이 살았다더군요. 해서인지 오래된 참나무 밑둥을 보면 하나같이 상처들이 있는데 땅에 떨어진 것으로는 모자라 더 많은 도토리를 따고자 몽둥이로 나무밑둥을 후려쳐댄 상처들이랍니다.
이제는 구황식품보단 웰빙식품으로써 자자한 명성을 얻고 있는데 도토리엔 지방흡수를 억제하는 물질이 들어있다 하여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헌데 음식엔 궁합이 있다지 않습디까.도토리 묵은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참나물과 찰떡 궁합입니다.그 도토리가 달리는 나무는 누가 심었겠습니까.
3.다람쥐가 심은 참나무
그렇게 좋은 참나무는 누가 심었습니까. 떡을 싸두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해서 떡갈나무요 나무껍질을 벗겨 굴피 집을 짓는데 쓴다 해서 굴참나무에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갈 때 상수랏 상에 올려졌다하여 상수라 상수라 하다 상수리나무가 되었고 발 고린낼 없애기 위해 잎을 따 짚신바닥에 깔았다하여 신갈나무. 냉장고를 열면 과히 유쾌하지 않은 냄샐 없애기 위해 잎을 따 탈취재로 썼으며 지금도 쓰고 있는 집들이 있는데..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람쥐가 젤 좋아하는 먹거리가 무언지 알아야 합니다. 누구의 입에서도 도토리라는 대답이 나오겠습니다만 아닙니다. 도토리엔 탄닌 성분이 있어 떫고 쓰죠. 그래서 다람쥔 도토릴 젤 좋아하진 않습니다. 춥고 배고픈 엄동설한을 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상식량으로 숨겨둘 뿐입니다.그렇게 숨겨두었던 도토리를 다 찾아먹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하여 참나무는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고 다람쥐는 참나무에게서 먹이를 얻는 대신 참나무를 심어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렇게도 부르짖는 더불어 함께 사는 법 아니겠습니까.
4.숯으로 거듭나는 참나무의 가치
숯은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한 때부터 생겼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2600년 전부터 숯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그 쓰임새를 함 봅시다. 옷을 다릴 때. 취사와 난방등 연료로써... 대문에 내걸던 금줄에..간장 항아리에. 오늘날에는 인테리어며 공기정화기능에 숯을 꿉을 때 나오는 목초액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들이 젤 좋아하는 삽겹살 꿉을 때 으뜸으로 치는 숯은 목질이 단단한 나무가 좋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참나무류가 주로 쓰입니다. 참숯이라 함은 그래서겠고 흔히 백탄이라 일컸는 숯은 1.500도 정도에서 구워지는 숯을 말하며 흑탄이라거나 석탄이라 불리는 숯은 그보다 훨 낮은 온도에서 구워지는 숯을 말합니다. 고온에서 구워진 숯은 뛰디리면 쇳소리가 납죠. 괴기를 꿉을 때 깨스냄새가 나지 않는다거나 탁탁 튀는 법이 없습니다.
5.6대 식량자원으로 떠오르는 버섯을 재배하는 참나무로써의 가치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 뿐만이 아니라 식량도 부족국가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쌀만은 자급이 되기에 식량부족국가인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도는 17-8%정도랍니다. 석유가 무기화가 되면 큰일이라지만 목숨이 왔다갔다 하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식량이 무기화가 된다면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 아니겠는가. 2006년도 까지만 해도 톤당 500불 하던 쌀값이 올해엔 물경1200불로 치솟아 제 3세계에선 식량폭동이 일어나고 있다는데 버섯은 곡류와 채소류 육류 어패류 과실류와 함께 6대 식량자원의 보고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식용뿐만 아니라 약용버섯으로 인기가 높은 표고버섯은 참나무에서 재배된다는 걸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리라 믿습니다.
6.신갈나무는 왜 죽었을까.
참나무 시들음병은 2004년 경기도 성남에서 발견돼 그동안 경기와 강원 일부지역에서만 발생했는데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주로 고지대에서 발병했으나 최근에는 저지대 야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피해지역이 확대되고 있다는데 광릉 긴나무좀벌레란 매개충이 나무에 침투해 수분과 영양분의 이동통로를 막아 나무가 고사한다더군요. 당국에서는 피해확산을 위해 막대한 인력과 자본을 동원하고 있습니다만 속수무책인듯 싶음은 왜서입니까.
청태산 숲체원에도 시들음병이 발병해 방제작업이 있었습니다. 증상이 심한 넘은 베어 약제처리와 함께 훈증요법을 썼고 심하지 않은 나무는 약제처리를 한 다음 일일이 싸메주었는데 죄다 죽어버린게 살아남은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는데서 비롯되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은 누구의 몫이겠습니까. 살아날 가망이 없어보였는지 어서 죽으라고 숨통을 막아버리고 방치해둔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습니다만 이렇게 완전히 죽어버린 나무는 시들음병을 옮기지는 않겠지만 누구를 탓해야 할런지요. 방제할 시기를 산출해낸다거나 약제의 양을 많게 또는 적게 투여해야 한다거나 등등을 연구하는 나무학자들의 아픈 고뇌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글을 정리하는 와중에 눈이 넘 침침해져 안경을 써봤는디 마찬가지넹~~


7.겨울나무를 보러 들어간 겨울 숲에선 또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넌 대체 모냐?









처음엔 무슨 버섯일게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어떤 병에 감염되어 죽어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참나무 시들음병을 유발시키는 매개충에 의한 것은 아닐테고 또 다른 어떤 병에 감염되어 그렇게 되었는지
무쟈게 궁금합니다.













돌연변이가 된 애기 앉은부채도 있을까?

1.넌 돌연변이냐?
애기앉은 부채.
앉은부채는 눈속에서 잎보다 먼저 꽃을 피웠다 소멸하는데 반해 애기앉은부채는 눈이 녹기 시작할 무렵 잎을 돋웁니다.
누구라도 그렇듯 오,뉴월 뙤약볓에 무수히 무성한 잎새들을 자랑하는 애기앉은부채지요.
그러다가 여름이 기승을 부릴 무렵이면 언제였냐는 듯 그 무성하던 입새들이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렸다가
찬바람이 불어올라치면 소담한 꽃을 피우는 애기앉은부채의 살아가는 모습은 거저 얻어진게 아닙니다.
앉은부채인지 애기앉은부채인지 알 수 없어"넌 데쳄 뭐냐? 란 관찰기와 "애기 앉은부채인지 앉은부채인지를 찾아서"와
"애기앉은부채의 허구와 진실"이란 관찰기를 통해 얻은 겝니다.
허나..아 허나 말입니다.
정말이지 돈 태졸 완존 돌아삘게 하는 건 왜서입니까.
여러해살이 풀이긴 하지만 푸른 잎을 가지고 겨울나기를 한다는 말은 어디서고 들은 바가 없는데
아 이녀러 왠수같은 애기앉은부채가 싹을 돋워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청태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숲체원내에는 무수히 많은 애기앉은부채가 자라고 있는데
모두가 다 싹을 틔우고 있다면 그러려니 하고 말겠는데 츠암내..






아카시 나무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하여..

아카시아 나무로 잘못 알려져왔던 아카시나무처럼 나에게 친근한 나무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가 어디~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었네~로 시작되는 과수원 길이란 동요탓일 것인가.
6~70년대 아카시나무의 꽃과 새순은 늘 배고픈 아이들에게 있어 좋은 먹거리를 안겨주었고
시,오리나 되는 등,하교길에 이파리는 다리 아픔을 잊게 해주는 재미있는 놀잇감이 되어주었던 나무이기 때문일것이다.
아카시 나무의 꽃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탐스러워 보일 뿐만아니라 순백의 빛은 어디 목련에 비할 것인가.
바람 한점 없는 날에도 코를 간지리는 그윽한 향기는 신록으로 물들어가는 5월을 찬란하게 하고도 남을 것이다.
아카시나무는 북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콩과 식물이며 25미터 까지 자라는 큰 키 나무로써
산성토양에서도 아주 잘 자라 척박한 우리나라 토양을 비옥하게 해주어 치산녹화에 성공한 나라가 되는데 1등 공신을 한 나무이리라.
그 아카시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밀원식물로써 척박한 토양을 기름지게 한 나무로써 자리매김해왔던 나무임에도 천대받다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무얼까.
아카시가 자라는 숲은 나쁜 숲이며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있어 혀를 내두르게 한 점은
조상의 묫자리까지 뿌리를 뻗어가기 때문에 없애려고 무진 애를 써도 어떻게 손을 써볼수도 없이 번식련이 강했다는 것이다.
그렇듯 아카시나무는 워낙 생장이 왕성하여 스스로 자라는데 많은 자양분을 필요로 하므로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도록
독성을 내보낸다던데 들리는 바대로 그말이 사실이라면 숲으로 부터나 인간으로 부터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생태계의 다양성이야말로 건강한 숲이라 일컬어지니 말이다.
그러나..그러나 말이다. 내가 본바로 아카시나무는 목재로써 가치가 없다고 알려져 온 말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우리나무 이름조차 몰랐던 때가 있었다. 그저 이나무도 나무고 저나무도 나무라고만 알고 있던 시절.
동네로 돌아들어가던 산샛길이 장맛통에 무너져내린 탓에 쓸려내려왔던 나무를 보고 참나무인가 싶어
얼씨구나! 절시구나! 몇날 며칠을 톱질해댄 끝에 몇 토막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아뿔싸 참나무가 아니고 아카시라나?
참나무라면 표고버섯 종균을 넣어 버섯을 키워보고 싶었는데 그 허탈감이라니..
꼬라지도 보기 싫타며 밭 구석진 자리에 쳐박아놓았던 아카시나무는 10년 세월이 넘게 흘러도 썩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 알려진 바로는 잘 길러놓은 아카시나무는 목재로써 가치가 높아졌다는데
강도가 높고 비중이 커서 내구성이 강한데다가 무늬와 색상이 아주 독특하여 일반목재보다 훨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한다.
땔감으로의 역할만 주어졌었기에 목재로써의 위용한번 제대로 드러내보지 못한채 사라져가고 있는 게
아카시나무에 대한 오해와 진실일 것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약리작용 가지고 있지 아니한 것들이 없다. 아카시나무 또한 그렇단다.
잎은 이뇨작용이 뛰어나 신장치료에 효과가 있으며 봄이나 가을에 채취한 뿌리껍질은 잘게 썰어 말려두었다 달여마시면
이뇨와 수종이며 변비에 많은 효험을 보였단다.
어쩌면 아카시나무는 목재로써의 가치보다 꿀을 생산하는 밀원식물로써 그 가치를 더 높이 사야할런지도 모르겠다.
잘 자란 아카시나무 한 그루에서 딸수 있는 꿀의 양과 가격을 생각해보라며..
우리나라 꿀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 수입개방을 앞두고 큰 위기에 처한 이 마당에
아카시나무는 많이 심어도 시원치 않을 지경이라고 일갈을 해댄 국립수목원 이 유미 박사의
아카시나무 예찬론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일례로 헝가리 같은 나라에서는 아카시나무의 품종을 개량해서 개화기를 늘리고 가로수를 조성해서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지 않은가.
이 유미 박사의 말을 한마디만 더 들어보자.
"굳이 아무곳에나 아카시나무를 심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 버려진 땅에 아카시나무를 심어 제대로 가꾼다면
아카시나무는 스스로 아무도 이용하지 못하는 땅속의 질소를 고정하여 양분으로 삼아 올곧게 자라서
우리에게 몇갑절의 보은을 할 것이다"
언젠가는 통일을 이뤄야 하고 통일은 될 것이다.
벌거숭이 민둥산이 되어버린 북녁땅을 푸르르게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할수 있을 아카시나무에 대한
학자들의 고뇌에 찬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02년 5월 경남 거창의 야산에서 촬영

달빛 마중




치마풀을 아시나요?

성성이풀.또는 치마풀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여러해살이 풀.
처녀치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건 일본어로 바꾸다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데
그늘지거나 습기가 많은 숲속에서 잘 자라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식물입니다.
백과사전에 나온 자료를 보면 뿌리와 줄기는 짧다고 나와있는데 꽃대와 줄기는 다른 것을 뜻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열 두 폭 비단치마를 받쳐입은 새악시 모습같다해서 치마풀이란 이름을 갖게 된데다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 넓은 잎을 가진 것도 모자라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라는 습성을 가진 식물들은
곁을 주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마치 민들레처럼 말입니다.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잎을 가지고 있는 것은 상록성이기에 겨울나기를 하기 위함에설게고
치마폭을 펼쳐 놓은 듯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라는 것은 또한 더 많은 햇살을 받아내기 위함에서겠죠.
4월초순 무렵에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데 그때부터 벌,나비를 불러댑니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는 건 필연이기에 이상타며 고개 갸웃거릴 이유 없습니다만
그때 부터 온 힘을 다하여 꽃대를 키우는 모습은 신기함에 앞서 이상타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고도 남았습니다.
꽃을 피웠으니 열매를 맺는 건 당연지살 터 왜 그렇게 온몸으로 꽃대를 밀어올리는지
무려 1년 여를 두고 관찰한 덕에 그 궁금증이 풀렸기에 본대로 느낀대로의 치마풀 모습을 풀어보게 되었습니다.
1미터 가까이 한껏 키웠던 꽃대가 쓰러진 모습을 보고 그때서야 아하! 소리가 나왔는데
그 소리는 신비로움과 놀라움에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던 소리였습니다.
치마풀..바람에 의해서 씨앗을 날리거나 곤충에 의해서 번식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삭과라고는 하지만 태생이 곁을 주지 않는 습성인지라 그렇게 꽃대를 키운건 아니었겠습니까.
치마풀을 보며 자식을 위해 온갖 고초를 이겨내시는부모님네들의 심성을 봅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키워서 머리 얹어주고도 모자라
하다 못해 월셋방이라도 얻어 독립을 시켜주시느라 쇠잖해진 모습을...
***처녀치마***
연보랏 빛 스란치마 받쳐입은 저 새악시
열 두 치마 폭폭마다 베어나는 그리움.
이 폭에는 님을 안고 저 폭에는 벗을 안아
살고지고 살고지고 그린 님과 살고지고
말아쥔 치마꼬리 눈물로 다 젹셔도
그리고 기다리는 님은 아니 오시네.



















겨울숲에 들어서면

1.눈 온날 아침
햇살 한번 차암 고운 눈 온날 아침입니다.
잉크를 풀어놓은 것 같은 하늘이며 낙옆을 떨궈 낙옆송이라 불리는 나무위로 내려앉은 허연헌 것이 눈빛인지 은빛인진 알수 없어도...


2.겨울 숲에 들어서면..





































































































































숲은 무엇인가

***숲해설 기법의 흐름에 대한 고찰***
북부지방 산림청.숲체원(푸른 미래를 꿈꾸는 곳)숲 이야기꾼. 정 태조
가.숲해설가의 사명
숲을 찾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숲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숲들은 개발로 무분별한 이용과 훼손으로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숲의 소중함은 자원으로써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가치 뿐 만이 아닙니다.
1.왜 숲을 아끼고 보전하며 살려야 하는가.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멸종 위기에 놓인 동식물 보고서’(레드 리스트)에 따르면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전 세계 동·식물 869종이 멸종됐고,1만7천여종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숲을 찾음으로써 그들의 발밑에 죽어나가는 이름 모를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그뿐이라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이미 멸종된 수많은 동,식물과 멸종위기에 처한 생명체들 많지만 크낙새와 사향 제비나비를 예로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인간은 잡식성이라서 먹거릴 가리지 않습니다만 사향제비나비는 뎅뎅이 덩굴에만 알을 낳고 그 알은 오직 뎅뎅이 덩굴만 먹고 자라서 성충이 되기에 뎅뎅이 덩굴이 없어진다면 그에 그치지 않고 덩달아 사향제비나비까지 사라지고 있습니다.
또한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는 장수하늘소와 크낙새는 어떻습니까. 장수하늘소는 서어나무에만 애벌레를 낳고 크낙새는 장수하늘소 애벌레만 먹고 산답니다. 서어나무가 사라지니 장수하늘소가 사라지고 그렇다보니 크낙새까지 사라지고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종내에는 인간들마저 발붙이고 살수 없는 지구가 된다는...
사안이 그러함에 숲해설가들의 사명이야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숲을 찾는 탐방객들로 하여금 숲과 인간과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법은 어떠해야하겠는가에 대해 교감을 나누며 스스로 숲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것..
나.숲해설 기법의 흐름
1.숲의 무엇인가?
참여자들로 하여금 숲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질문은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숲을 찾는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에게 숲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구체적인 질문은 설명보다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질문속에 답이 있으며 질문은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는 새로운 눈이며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내게 하는 사고의 보물창고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사안은 어떠한 답변이 나온다 할지라도 부정보다는 그럴수도 있겠다며 긍정적인 반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질문은 있을지라도 우매한 답변은 없다는 말을 명심할 것이며 또한 우매한 질문일지라도 질문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2.숲의 정의
나는 숲을( )이라고 생각한다. 괄호안에 들어가는 말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사랑)(생명)(엄마의 자궁)(생명의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거나 요즘 회자되는 (치유의 숲)이거나(문학과 인생)편안함을 주는 곳)등,등...
그러나 한마디로 숲은 이것이다. 라고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초 사흔날 밤 달을 따겠다고 달을 향해 밧줄을 던지는 것만큼이나 우매하고 어리석은 짓일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꼭 한마디로 정의를 내려보라면 숲은 경이로움을 주는 곳이 어떻겠습니까.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 설령 살아 숨쉬지 아니하는 것들일지라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신비하다 못해 오묘하고 오묘하다 못해 경이롭지 않습니까,
숲해설은 지식을 전달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물론 밑바탕에는 정보와 지식이 당연히 내포되겠지만 그 위에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더불어 참여자들의 이해와 체험이 어울어지게 하는 숲해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숲해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게 해주려고 설명했는가가 아니라 참여자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는가 일 것입니다.
3.숲 해설의 기법
인간의 뇌는 들은 것은 10% 직접 읽은 것은 30%를 기억하며 직접 본 것은 50%이며 직접 관찰한 것은 90%를 기억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습니다. 스스로 관찰하고 살펴보고 생각하며 자연의 소중함과 신비로움을 직접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한 걸음 앞으로 더 나아가는 숲해설의 기법일 것입니다.
4.스토리 보드가 있는 숲해설
따라서 이 나무이름은 무엇이고 저 꽃 이름은 무엇,무엇이라고 설명에 그치고 마는 숲해설이라면 이미 나무이름 꽃 이름을 잘 알고 있는 참여자들에겐 식상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물푸레나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귀하가 숲 해설가라면 물푸레나무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그저 책에서 본바 대로 물이 푸레져서 물푸레란 이름이 붙혀졌다거나 염료로 이용한다거나 나무가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있어 농기구를 만드는데 많이 쓰였다는 정도에 그치고 말겠습니까.
조금 나아간다면 나뭇가지를 짓이겨 물이 푸레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기도 하겠지만 이때 금상첨화는 바로 스토리 보드 즉 물푸레나무라 이름지어진 연유를 풀어내는 것입니다.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능력이라고 했거늘 그들보다는 조금 앞서가는 숲 해설가라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만들어낸 물푸레나무의 스토리 보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나무에 물푸레나무라는 이름을 붙혀준 사람은 화전민이었다*
바늘하나 꽂을 틈만 있으면 씨앗 한 알 이라도 더 뿌리고 싶은 게 농부의 심정입니다. 물푸레나무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 화전민이었습니다. 화전을 일구어 삶을 영위해나가던 어느 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려고 개간해놓은 밭이랑 옆으로 졸졸 흐르는 물가로 내려섰다 고개를 갸우뚱거렸음은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졸졸 흐르는 물은 농부의 마음이라도 담아낼 듯 투명한데 반해 물이 조금 고여 있는 곳의 물색은 푸르딩딩하드라 이겁니다.
그 연유를 몰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려 내려섰다는 것도 잊은 채 왜 그럴까를 고민해보다 물이 고여있는 곳에 어떤 나뭇가지가 잠겨있는 것을 보았겠죠.“호오! 이 나뭇가지가 물을 푸레지게 했다?”물이 푸레지는 나무. 물이 푸레..물이 푸레..그러다가 오늘 날 물푸레나무가 되진 않았겠습니까.
*끊임없이 연구해서 준비해야 할 스토리 보드*
“관심만큼 감동을 주는 것 없고 관심만큼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없다.” 라는 말을 종종 인용합니다. 스토리 보드를 준비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외에 (왜 그럴까?) 라며 항상 고개를 갸우뚱거려보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준비된 숲해설가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꽃도 지고 잎도 지고 낙옆마저 온대로 가버려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겨울숲에서 나무 이야기며 꽃 이야기를 하며 풀어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내 년 봄을 위해 잎눈이 될 부분과 꽃눈이 될 부분을 만들어놓고 겨울나기를 하는데 우리는 내 년을 위해 무슨 준비를 했느냐는 정도이진 않겠습니까.
손도 발도 시려 나무이야기고 숲해설이고 간에 어떤 달콤한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무렵이 되면 생강나뭇 가지를 말려두었다 우려낸 차 한 잔씩을 건네드리며 자연스레 생강나무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차의 효능이라거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숲해설이야말로 기쁨과 함께 감동을 안겨주는 숲해설이 되진 않겠습니까. 올 겨울엔 큼지막한 포트를 하나 준비할 요량입니다.
5.감동이 있는 숲해설을 위하여
수렵을 해서 먹고 살던 시절이거나 농경문화이던 때 세상을 이끌어갔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힘이 있는 사람이 리더였습니다. 산업사회로 넘어와서는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리더가 되어 세상을 이끌었습니다. 그렇다면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 21세기 매래는 어떠한 사람들이 리더가 되어 세상을 이끌어나가겠습니까.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들이라 하였습니다. 더불어 함께 잘 살아가는 사회가 되려면 감성을 가진 사람. 즉 삶이 힘들고 버거워서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면 눈물을 닦아주고 힘내라며 곁엔 우리가 있다고 어깨도 감싸안아주고 등도 다독여주는 사람, 즉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 세상이라야 될 것입니다. 9억을 가졌는데 1억만 채우면 10억이 될 것이라며 남의 입속에 들어가는 것까지 빼앗아 제 입에 쳐넣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면 그러한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 건강한 사회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위대한 철학가 사상가 대문호 칭호를 듣는 사람들이며 화가 음악가. 등,등..그들이 어디서 감성을 키우고 키운 감성은 영감이 되어 인류가 존속하는 한 잊혀지지 않을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숲입니다. 그렇게 좋은 숲을 자주자주 많이많이 찾으셔서 21세기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기를 빈다며 숲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감동먹었다며 쏟아지던 뜨거운 박수세례.
그게 다도 아닙니다. 감성을 불러일으켜줄 수 있는 시 한수 낭송. 자작시라면 금상첨화요 그보다 더 좋을 것 아무것도 없을 것 입니다. 저는 인기인이 아닙니다만 박수와 환호를 먹고 삽니다. 여러분들께 뜨거운 박수를 받고 보니 그냥 발걸음 돌릴수가 없어 선물 하나 준비했습니다. 모두 눈을 감고 손 내밀어보십시오. 손 안에 어떠한 선물이 쥐어질 것인가 궁금함과 호기심 가득 담아...
***손 내밀어 봐요***
올해에도 장독대 옆에 봉숭아가 피었네요.
빠알갛게 피어오르는 연분홍빛 그리움.
그 꽃잎 아름따 물들여드리고 싶은 이 마음
그대 혹여 아신다면 손 내밀어 봐요.
손 내밀면 맞잡아 보던 손 보이지 않네요.
그 꽃잎 아름따 짓이겨보니
빠알갛게 베어 나오는 건 아픔이네요.
손 내밀어줘요
내 눈물 다 마르기 전에...

설경





























차암 알수 없는 일들

1.딱따구리가 살던 집
숲체원엔 많은 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딱다구리도 많은 종류들이 살고 있겠지만 눈으로 보아낸건
까막딱다구리와 쇠딱다구리가 전부입니다.
헌데 차암 알수 없는 일이 벌어진건 무엇입니까.
딱다구리는 살던 집을 버리고 이사다니는 습성이 있다는 걸 반증이라도 하듯 지난 해 살던 집을 버린 곳입니다.
재미있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건 그 후입니다.
동고비라는 작고 구엽고 겁이없는 이 새들의 습성은 또한 딱다구리가 버리고 간 집을 보수해 사는데
지난 해 딱다구리가 살다 버리고 간 집을 보십셔.
나무껍질과 구멍과 그 사이의 다른점이 화악 들어오지 않습니까.
동고비란 친구는 딱다구리에 비해 몸집이 훨 작습니다.
이 궁리 저 궁리끝에 천적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흙을 물어다 구멍을 메운 자리입니다.
남겨놓은 구멍보다 메운 부분이 훨 넓으니 그 수고로움이 오죽했겠습니까.



2.나는 야 동고비.
나는 야 동고비입니다.
누가 나에게 동고비란 이름을 지어주었는진 알수 없으나
작고 구여운 내 모습에 따악 어울리는게 넘이뽀 맘에 쏘옥드는 이름임에 틀림없습니다.
풀숲이거나 나뭇가지 사이에 심지어는 죽은 나무가 아닌 산나무에도 구멍을 내 집을 짓고 사는 친구들의 삶은
얼마나 멋질깔 생각하면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나는 야 똥고비란 이름이 말해주 듯 풀숲이고 나뭇가지 사이고 간에 집을 짓는 재주를 타고 나지 못한 넘임에
딱다구리가 살다 버리고 간 집을 보아낸 오늘이야 말로 살판나는 순간입져.
3.앓느니 죽느니만 못하더라.
허나...아! 허나 말입니다.딱다구리가 살다 버리고 간 집은 입구가 얼마나 넓던지요.
도처에 날 잡아 한입에 꾸울 꺽 하려고 호시탐탐 탐욕스런 눈초리가 휘번덕거리는 숲속이니 만치
그 집은 내가 살만한 집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집을 구해보자며 돌아서려는데 워찌나 아깝던지요.
돌아가던 날갯짓을 멈추고 곰곰 생각에 잠기다 날개쭉지를 타악 쳤음은 왜서였습니까.
옳타꾸나. 내 몸집에 맞게 고쳐쓰면 되겠구나. 그러다 세상사는 이치를 또 하나 깨우쳤습니다.
세상만사 맨입으로 되는 것 없단걸..
하여 날개를 걷어부쳤습니다.
흙을 물어다 침을 섞어 문을 줄여나가는데 어찌나 고된지 차라리 앓느니 죽느니만 못하더라구요.
몇날 며칠? 아니 몇달이 걸렸는지도 모릅니다.부리는 으스러지고 입은 부르트기를 그 얼마였습니까.
그러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며 시작이 반이란 말마따나 내집을 갖고보니 벅차오르던 기쁨과 환희.
내집없이 살다 내집 마련을 하고 기뻐하는 인간들보다 덜 하겠습디까.
그렇게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동고녀를 만나 동고돌이며 동고숙이를 낳아 알콩달콩 살던 마이 홈..
머리 나쁘거나 기억력 좋지 않은 인간덜 보고 새대가리라고 우리를 빗대 비아냥대던 조동아리들 이잔 닥쳐지겠죠.
4.장대도 끝이 있다건만..
장대도 끝이 있다더건만 슬픔의 끝자락은 어디입니까.
죽자사자 몇달을 고생해서 겨우 여름 한철과 달포가량이나 빨리오는 겨울탓에 짧은 가을을 살았을 뿐입니다. 예년보다 며칠이나 앞서 첫눈이 포옥 폭 내려쌓인 날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누가 문밖에서 이리 오너라! 외쳐대길래 언넘이 이른 아침부터 오라가라냐며 고갤내밀었던 바
딱다구리란 넘이었는데 거넘이 모랬는지 아시겠습니까.원래 내집이었다며 당장 집을 비우라던데
츠암내..기가막히다 못해 미치고 팔짝뛰며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보상은 고사하고 이사비용도 없이 말입니다.
하여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지 않느냐며 못나가겠다며 조목조목 따졌던 바 머슥해하며 돌아가던 딱다구리를 보며
내심 쾌재를 불렀습져."거럼 그렇치".세상이야 인본과 인륜에 가치관이며 법도까지 들먹이지 않는다해도
이판 사판에 개판이 된지 오래라 한들 더불어 같이 함께 평화로움을 나누고 사는 숲속에선들 그러할 수 있겠느냐며..
허나...아! 허나 말입니다. 담날 아침 삭신이 얼어붙는 듯한 추위에 왠일인가 싶어 문밖을 나서보다
뒤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몇달을 고생고생해가며 보수해놓았던 대문이 송두리채 뜯겨져 나가고 말았더군요.
어떻허든 겨울나기를 한 연후였다면 덜 아프고 덜 슬펐을겁니다.
이리보나 저리보나 사방이 허연한 눈으로 뒤덮힌 눈숲에서 어찌 살라는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여보소! 벗님네덜 내말 함 들어보소. 딱다구리란 넘.
간을 꺼내 아득아득 씹어먹어도 씨원찮지 않겄습디까.





딱다구리란 넘 보면 싸대기라도 한대 올려줘야겄다. 듣고보니 동고비 처지가 딱하기도 할 뿐더러
살아있는 나무에 구멍을 냈어도 넘 이뻐뵈길래 눈감아줬더니만 거넘 행실이 괘심치 않은가.


네가 가느냐







































***네가 가느냐***
네가 가느냐,
부는 바람에 이.저리로 휘둘려 간다하면 어디로 가는게고
온대로 간다하면 온대는 어디메뇨..
바람이 분다. 꽃잎이 흩날린다.
부는 바람에 갈길 몰라 나뒹구는 너를 보며
나를 본다.
하나..
누군들 기억하랴. 그 싱그러웠음을 애통해 하다
어디로 가느냐 말이나 건네보랴.
추슬추슬 내리는 비는 포도위만 적시는게 아니다.
가슴에 삭수리며 내리는 비는..
이미 비도 아니다.
눈물을 억압하고,억압하고..
아니다.
억압당할 눈물마저 남아있지 아니하다.
일탈을 억압하고,강요하고..
아니다.
일탈도 억압도 강요도 그런 호사는 가라.
해탈을 억압하고,열반을 꿈꾸게 한다.
아니다.
해탈은 拙이요, 열반은 歿이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하나..
손놀림으로 오르는 오르가즘뿐이다.
그때만은,,
핏기잃은 얼굴에 화색이 돌고
번데기 일탈해 나방으로 날개짓해보나..
하나...
이내 거미줄에 걸려 파득이는 가여운 나비..
누가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구할꺼나....
바람이 분다...

밤은 무겁고 어둠은 깊다

1.밤은 무겁고 어둠은 깊다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던건 밤9시경 부터였습니다.
무겁게 내려앉은 어둠 그 위로 꽃잎처럼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쉬 잠못이루고 뒤척였음은 왜서였습니까.
생각은 생각을 낳고 낳은 思念은 死念이 됩디다. 그리하여 지글지글 끓던 이마.
그 위에 닭알 한알 또옥 떨구면 후라이라도 될 듯 싶어 死葬시켜버리고 싶던 몸뚱아리.
차암 아픈 날들있었기에 생각하지 않고 살자며 잠을 청했음에도 말입니다.

2.내 몸은 나를 알던 때..
내 몸은 나를 안다. 허접한 육신이 무엇을 갈구하는지..
아침먹고 돌아선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뱃구레 꼬르륵 댐은 허기지니 무언들 우겨 넣어 달라는 메세지다.
대그빡이 띵하고 휑한 속은 날 세운 비수로 후벼파낼 듯 쓰라려옴은 이젠 제발이지 술 뚝! 해야 살것이란 메세지에 다름이 아니구.
하루가 다르게 날이 차짐에 잔기침을 할제마다 끓어오르는 가래는 담배를 끊어버리라는 메세지요.
피곤해지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거나 삼겹살 집을 돌아갈제 괴기굽는 냄새에 회라도 동해지면 괴기를 먹고 싶다는 것일 터..
다 떨어진 氣는 바야흐로 눈에까지 차고 올라온 것일까.
앞서 오는 여인의 나붓나붓한 걸음새에 파도인 양 넘실거리는 푸진 젖무덤에도 동해지는 회는 무엇이랴.
무화과 같이 달디 단 젖무덤을 입안 그득 넘치게 베어 물고픈 생각이라도 들라치면 서리 맞은 고추마냥 흐믈해졌던 넘이
어쩌다 곧추서기도 한다. 오살헐넘 같으니라구..
간에 벤 독을 추스려내고 걸러내자며 헛개나무 줄기며 열매를 다려먹어본들 무엇하랴.
내몸은 나를 알건만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하는 나의 몸은 가련타.
내 몸의 주인은 나일진데도 주인노릇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내뒹굴리는 나는 내몸 주인 자격조차 없다.
기여코 또 손아귀로 꽤찬 쐬주 한병은 지난했던 하루의 만사를 잊어내기 위함일까.
술이 술을 술술 불러서인가. 숙취로 칼칼해진 속을 독으로 독을 다스린다듯 풀어내기 위함에선가.
술잔을 높이드니 하루의 시름이 있었던가 싶습디다.
그래..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터 내일 걱정과 근심일랑 내일로 미루자며 한입에 털어 넣으니 이내 짜르르 돌았다.
멸치도 생선이라지 않더냐며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멸치 한마리 잡아 똥을 발라내고 짖씹어본다.
칼슘도 많다하고 무엇보다도 짭쪼름한게 깡소주는 아닌게라고 항변함이 어설플진 몰라도 말이다.
삼라와 만상을 속인다해도 속일 수 없는 계절의 변화에 무서리만 내리던가.
바람도 어느사인지 모르게 삭풍으로 변해 몇닢 밖에 남아있지 아니한 잎새들을 부르르 떨게 하더이다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어찌 나무의 지혜를 따르지 못하는지 알수 없다.
찬란했던 봄의 영화도 놓아버리고 한시절 푸르렀음도 버려버리고 빈몸으로 겨울을 채비하는 나무를 닮을 수는 없겠던가.
길은 어디에나 열려있다건만 하늘로 가는 길마저 그러할까 싶다.
걸어서 하늘까지 오를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살아왔던 날들이 가당찮은가.
풀이 온대로 가듯 낙옆 뒹구는 소리에 나도야 잠시 머물렀던 이땅에서 떠나 해탈의 문이 기다리고 있는 곳.
죽음 저편 너머 영원의 집으로 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풀이 눕는다***.

풀이 눕는다.
짧아져 가는 햇살을 더 품어보려 누워 보건만
그렇게 한번 누우면 누운 풀위에 바람이 누워
바람의 무게에 누운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종내에는
온대로 간다.
내가 눕는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기에 살 날을 위해 누워 보건만
그렇게 한번 누우면 누운 내 위에 삶! 그 질곡의 무게에 짓눌려
누운 자리에서 털고 일어서기가 좀체 쉽잖다.
풀이 눕는다.
풀이 누웠다 누운채로 온대로 가 듯 내가 눕는다.
내도 누우면 풀처럼 온대로 가리라.
풀이 누웠던 자리로--
풀이 눕는다.
풀이 눕고.. 내가 눕고..
사랑도 눕는다.
***한 사내가 우네***
샛별이 고향이라던 한 여인이 있었네.
날마다 별을 헤며 그 여인을 그렸네.

땅거미 지고 어스름속에 또 하루 해 기울면
서편마루에 초록으로 뜨는 별 바라기 하며
내가 부르는 애모의 노래 그대 듣느뇨.
목 놓았네.
너는 가고 나는 떠나 엇갈린 만남이 될지라도
너는 가보고 나는 떠나보자며 길 나섰었네.
찬 빗 속에 한 여인이 서 있었네.
붉디 붉은 장미 한 아름 건넸었네.
파리했단 입술로
꽃 선물은 첨이라며 함박웃음 지었었네.
그때 현란했던 꽃향 비,바람에 졌으리까.
시든 꽃도 사랑이라 믿었건만
우리 머물렀던 자리 스쳐지나간 바람처럼 잊혀졌으리까.
우네.우네.
그대 창가에도 떳을 초록별 보며 우네.
짧은 만남 긴 이별로 이 밤도 별 바라기 하게 될 줄 몰랐다며
한 사내가 우네.


3.창을 여니...





















보고픈 유니야!




넌 내가 찍었어.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낯설지만..
하얀 눈 포옥 폭 내려쌓인 눈밭에다 보고픔을..


숲에서 노올자 포럼에서




























































인연의 잎사귀

작성자 : chu6868

인연의 잎사귀-이해인 살아가면서 많은 것이 묻혀지고 잊혀진다 하더라도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언젠가 내가 바람편에라도 그대를 만나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겠지만 그대와의 사랑 그 추억만은 고스란히 남겨두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까닭입니다 두고두고 떠올리며 소식 알고픈 단 하나의 사람 내 삶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 남겨준 사람 슬픔에서 벗어냐야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그대에게서 벗어나 나 이제 그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네 처음부터 많이도 달랐지만 많이도 같았던 차마 잊지 못할 내 소중한 인연이여.... 첨부이미지첨부이미지첨부이미지

똑똑똑~~찡아님 문열어 주세여????

작성자 : chu6868

찡아님 모혀????
오늘 강아지 맹그느라 혼났어여~~~ㅎㅎㅎㅎ
이쁘지?? 얘 누구게여????
알 마추시믄 ???~~~~~뽀뽀뽀10 번 해줄라카는디????
ㅎㅎㅎㅎㅎㅎ~~~~
얘 안고 주무세여~~~~ㅎㅎㅎㅎㅎ...
유니솜씬가? 손감이 좋네~~
그치만 걀 안고 자느니 벼개가 훨 나.
벼개보다 더 훨 나은건 말못혀..

눈내리던 밤은 지나고

가을은 갔습니다. 비바람이 아닐지라도 내 꽃잎들 한잎 두잎스러지고 남은게라곤 찬바람뿐인 빈숲이 주는 휑함
허지만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음은 무엇입니까.
생장염장하는 우주변화의 진리앞에 꽃은 피고지고 피고지고 피고 또 지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서 사라져선 안될 5종





지구상에서 절대로 사라져선 안될 동·식물은 무엇일까?라는 한겨레신문 기사가 있었습니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멸종 위기에 놓인 동식물 보고서’(레드 리스트)에 따르면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전 세계 동·식물 869종이 멸종됐고, 1만7천여종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답디다.
동·식물 전문가 5명이 절대로 사라져선 안될 동·식물로 영장류와 박쥐, 벌, 균류, 플랑크톤을 꼽았다던데..

영장류는 394종 가운데 114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데. 사냥과 서식지 파괴가 주요인이랍니다.
영장류는 인간의 유전자와 90% 이상이 일치해, 영장류 연구는 인류의 기원과 문화 발달 과정을 알수 있게 해준다는데.
영장류는 열대 우림 존속에도 필수적이란 이윤즉슨 이들이 과일 등을 먹고 배설하는 행위는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역할이라니
나무심기 심들면 과실을 씨앗 발라내지 말고 잔뜩먹고 숲에가셔서 똥꼬에 심들 함 줘보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 하늘을 날수 있는 유일한 포유류란 박쥐와 꽃가루를 날라 식물의 번식을 도와주는 벌과
바닷속 플랑크톤은 세계 산소의 절반가량을 만들어내는 산소공장이요
식물도 아니요 동물인지 생물도 아닌 버섯또한 숲의 분해자로써 사라져선 안될 소중한 것이라더군요.
인간이기를 포기한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아니한대도 좋을 존재로 남을 터
난 이담에 벌이라도 되고 싶슴다.
이꽃 저꽃에 날아들어 이님도 내님이고 저님도 내님인듯 싶건만
이님도 내님이 아니요 저님도 내님이 아닌 님이시여!
오호라 그댄 어디메에 바람처럼 숨었느뇨.

목공지도자 워크샵





























아버진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1.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란 동요가 귀에 익은 탓입니까.당나귀보단 나귀가 정겨운 이유는..
영월군 연당리 서강가에 당나귀 타는 원시마을이 있었습니다.
상당한 재미와 흥미를 유발시키며 산촌마을의 소득증대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던 터
궁금한건 참을 수 없게 하더이다만 워낙이나 바삐 이어지던 캠프탓에 이제나 저제나 기회만 노리던 차
나흘이나 주어진 휴물 숙소에서 이리 빈둥 저리 빈둥 빈둥거릴수 있겄습디까.
길치인 탓에 묻고 또 물어 물어가며 찾았던 당나귀 체험마을에서 첨 본 당나귀는 어찌 그리도 정겹던지요.
고집이 무척 쎈 동물이기에 고집이 센 사람을 보면 당나귀 고집같다고 빗댄다지만 속설과는 달리
그다지 고집이 세질 않다는 말을 반증이나 하듯 고녀석 눈이 얼마나 순박하던지요.
아이큔 70정도에 수명도 6-70년은 거뜬히 살아낸단 나귀.거넘 한마리 분양받아 타고 다닐수 있담 그야말로 환상적이겠지만
새끼값이 물경500만원이나 한다니 아서라 말어라! 걍 환상에 그치고 말일입니다.









내 귀는 얇다









1.앗! 벌집이다
입동이 지났으므로 겨울이 시작된겝니다만 초 겨울치고 햇살한번 무쟈게 좋던 날이었습니다. 그저 햇살이 너무 좋아 햇살바라기를 하다보니 어느사인지 나도 모르게 내가 걷고 있던 곳은 태기산으로 이어지는 숲길이었습니다.파아란 하늘 마알간 햇살속에 귀밑머리를 간지리며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이 안겨 주는 평화로움에 내가 걷는게 아니요 숲이 날 이끄는 것만 같던 길을 가다 눈이 번쩍뜨였던건 왜서였습니까. 머언 곳이었지만 한눈에도 벌집같았단 것 가까이서 보니 틀림없는 노봉방이라 하는 벌집이었습니다.
2. 차암 얇은 내귀
귀가 얇단말은 무슨말인지 알수 없던 때 있었습니다. 귓바퀴를 이리 만져보고 저리 쓰다듬어봐도 얇은지 도톰한지 도통 가늠이 되지 않던 때.살다보니 귀가 얇단 말은 남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내귀도 얇습니까.노봉방인지 벌집인지 산삼보다도 귀하다던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까.

말벌집은 노봉방이라하여 전통 민간요법에 귀하게 쓰이는 약재랍디다. 벌집은 무균상태이며 옛부터 숨은 보물이라하여 산삼보다 더 좋은 귀한 영양식품이었으며 효능으로는 중풍, 기관지천식, 기관지염, 당뇨병 간기능 개선, 유방암(염), 각종 신장염, 뱃속 염증, 종창, 통증, 기관지염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전해 내려 오고있다던데..

본초강목에서는 뭐라했는지 봅시다. 노봉방(Nidus vespa) 벌집의 효능은 거풍공독 (풍을 물리치고 독을 없앤다), 산종지통(종기를 없애고 통증을 멎게 함)이라고 하였다며 외용으로는 노봉방만을 다려서 유옹, 옹저(악성종기), 악창(고치기 힘든 악성 부스럼)에 발라 씻어 주라 하였으며 외과, 치과에 치료 및 살균효과가 있다고 하였답디다.

3.이걸 어쩐다?
가는 잎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잎을 갈아 잎갈나무라 불리기도 하고 낙옆을 떨구기에 낙옆송이라 부르기도 하는 나무를 타고 자라는 덩쿨에 둥지를 틀고 있는 벌집.높이를 가늠해보니 대략 6-7미터.고심끝에 쭈욱 빼들면 6미터가 되는 고지톱을 들고 채집길에 나섰습니다. 물론 정보를 얻으려 뛰디렸던 자판에 좌악 일목요연하게 뜨던 노봉방 채집기는 필수였습니다.말벌이 주는 위험성을 말해주듯 모두가 중무장도 모자라 완전무장을 한 모습들을 보며 나름대로 무장을 하고 나섰습져. 머리엔 비닐봉지를 두겹으로 둘러쓰고 장갑도 두컬레를 껴고..이만함 되얐다 싶어 룰루랄라 콧노랠 부르며..
허나 팔을 쭈욱펴도 미치지 못하던 고지톱.그러나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이 궁리 저 궁리끝에 궁여지책으로 나뭇가지를 덧대 간신히 사냥에 나섰는데..흔들리는 덩쿨따라 춤추듯 날아들던 말벌들이었담 그렇게 혼비백산해서 걸음아 날 살려라 삼 십 육계 줄행랑을 치진 않았을 겁니다. 태평양 전쟁때 게다짝을 신고 다니는 넘들이 그랬던 것처럼 부웅하며 가미가제식으로 얼굴을 향해 내리꽂히던 말벌들. 장갑에도 들러붙어 탁탁 쳐내야 떨어지던 벌 또 벌떼들..후퇴다.튀어라...둘쨋날도 첫쨋날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톱질 몇번 하다 톱 내던지고 줄행랑을 친건..
3.톱질하세! 톱질하세! 슬겅슬겅 톱질하세!
새벽이나 오밤중에 사냥에 나선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어두워지면 앞을 보지 못하는가 싶어 급기얀 벌을 키우는 사람에게 물었습져.밤엔 앞을 보지 못할지라도 불빛을 보곤 날아드니 밤중에 후레쉬를 켜들고 벌집을 건드리다간 일난다며 조심하라는 말에 무섬증만 커갔지만 이미 빼든 칼이니 끝장을 봐야지 않겠습디까. 허나 마뜩한 방법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습니다.그렇게 벌집과 씨름한지사흘 째 되던 그날 아침은 무서리가 잔뜩 내렸습디다.기온이 뚜욱 떨어졌단게죠.날이 추우면 활동을 못한단 야글들었던 바 서둘러 벌집을 향해 앞으로..앞으로..
머리에 뒤집어쓴 비닐봉지탓입니까.숨쉴때마다 뿌옇게 서리는 김을 닦아내며 살펴본 동태.역시나 벌떼들 보이지 않았습니다. 흔들어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간밤에 다 얼어죽었나 싶어 때는 이때다 하며 톱질해댔습니다. 톱질하세 톱질하세 슬겅슬겅 톱질하세.몬 정신있어 그딴 노래까지 부를 수 있었겠습니다만 워쨌든 슬겅슬겅해댄 톱질탓에 투욱 하고 떨어진 말벌집은 그야말로 남산만했습니다. 속을 딜다보니 벌들이 벌벌떨고들 있었습니다. 준비해간 다섯겹의 비닐봉지를 뒤집어씌우고 이마에 벤 땀 쓰윽 닦아냈습니다.히유!!

4.벌집의 신비
말벌들은 위대한 건축가들입디다. 5층이나 되는 벌집은 차치하고 종잇장같이 얇게 켜켜히 둘러친 보호막은 군데군데 틈새들을 둔게 추위나 더위로 부터 애벌레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같았는데 그 재료는 무엇인지 도시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무늰 구름버섯처럼 예쁜게 이 도안을 이용해 벽지를 만든다면 대박나겠다 싶더이다. 나중에 안 사실은 나무를 갉아 효소로 분해를 해선 만든게라던데 신비 그 자체 아니겠습디까. 그런데 또 알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벌집에 꿀은 없었으니 애벌레들은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겨울을 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밖엔 달





***창밖엔 달***

배 불러지는 달 화안히
창공에 걸려있던 밤이었다.
그때
반짝이던 별들도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별 하나, 별 두울, 별 셋.
세다 그만 두었다.
이 별은 내 별이고, 저 별은 님의 별이라
가늠해보다 그만 두었다.
잠 못이루게 하는 月夜.
창가에 일렁이던 그림자 하나.
님이신가 하여 왈칵 열어젖힌 틈새 헤집고 들어온건
야속한 달 그림자였다.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창 굳게 닫고
커텐도 짙게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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